악의 원인을 캐다
나는 당신이 때 묻을 수도 달라질 수도 전혀 바뀔 수도 없으신 줄을 알고, 당신이 참 하느님이시사 우리 영혼뿐 아니라 육체를 지으시고, 우리 영혼과 육체뿐 아니라 모든 영혼, 모든 육체를 지어주신 우리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었으나 그때까지 악의 원인에 대해선 명백한 해결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나는 이를 찾기 위해 상주불변하시는 하느님을 변하시는 분으로 믿도록 강요하는 그런 방법을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탐구하는 대상이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차분히, 그리고 저들의 말엔 진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탐구했습니다. 내가 진절머리 나도록 싫어한 저들이야말로 악의 원인을 캔다면서도 자신들이 악에 차 있음을 내가 알아차린 때문이었으니, 저들은 자기네 본체가 악을 범하는 것에 못지않게 당신 본체가 악을 용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악을 짓기는 자유의지 때문이고 인간이 벌을 받는 것은 당신의 엄정한 심판 때문이라고171 들어서 나는 이를 깨치려고 애써보았으나 명확한 이해를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이 심연에서 마음의 눈을 돌이키고자 발버둥쳐도 다시 빠져 들어가고, 또 기를 써보아도 또다시 빠져 들어갔습니다. 한 가지, 나를 당신 빛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란 내가 의지를 지니고 있음이 살아 있음과 같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하고 싶거나 말고 싶어질 때 그 하기와 말기를 남이 아닌 내가 하는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느니만큼 여기에 내 죄악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하게 되는 일로 말하면 내가 함이 아니라 당함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것은 죄가 아니요 다만 벌일 따름인지라, 따라서 당신이 의로우시다는 생각으로 나는 불의한 벌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헤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내신 이가 누구냐? 내 하느님이 아니시냐? 그 좋으신 분, 아니 좋으심 자체가? 그렇다면 좋은 것이 싫고, 나쁜 것이 좋아지는 내 마음이 어디로 좇아 오는 것이냐? 내가 벌 받기 위해서냐? 나라는 것이 온통 지선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면 도대체 누가 내 안에다 이것을 두어 고통의 씨앗을 뿌려놓았느냐?
만일 악마가 한 노릇이라면 그 악마는 어디서 생겼나? 그가 선한 천사에서 악마가 되기는 사악한 의지 때문이었다 하자. 하나 악마가 되게 한 그 악의가 어디로 좇아 났는가? 무릇 천사란 지선하신 창조주께서 만드신 바가 아니냐?
나는 이런 생각에 새삼 가위눌려 숨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아무도 당신을 찬미하지 않는 지옥, 그리고 인간이 악을 짓는다기보다 오히려 당신이 악에 예속되었다고 믿는 그러한 오류에까지 끌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