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원인을 다시 캐다
나는 악의 원인을 찾고 있었으나 잘못 찾고, 그러기에 내 탐구로써는 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체의 창조물, 곧 땅이며 바다며 공기, 별들, 그리고 죽기 마련인 나무와 짐승들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온갖 것과 보이지 않는, 곧 아득한 하늘이며 모든 천사며 그 외 신령한 모든 것을 내 정신 앞에 펼쳐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마저 마치 물체인 양 제자리에다 하나씩 내 상상을 따라 정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사실상 물체인 것이나 내가 신령한 것으로 상상한 것이나 간에 그 모든 창조물을 형체의 종류에 따라 구별될 뿐인 한 커다란 용적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아무리 크다고는 해도 내가 모를 정도의 크기는 아니고, 다만 내 자작으로 생각한 크기, 그리고 물론 어느 모로든 유한한 그것이었습니다.
한편 주여, 당신으로 말씀하면 이것을 감싸주시고 꿰뚫으시나 어느 모로든 무한하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으나 하나의 바다인 채로 무한정인데 그 안에 어느 유한하나 커다란 해면海綿이 있어 무한한 바다로 남김없이 적셔지는 것처럼 이런 식으로 나는 당신의 유한한 창조계와 그 안에 편재하시는 당신을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혼자 이렇게 뇌까렸습니다. ‘자, 여기 하느님과 그 창조물이 있다. 하나 좋으신 하느님은 이것들을 무한량 초월하신다. 무엇보다 좋으신 분으로서 좋은 것들을 창조하실 수밖에 없으니 보라, 그분이 그것들을 감싸고 채워주시지 않느냐.
이렇다면 악이란 무엇이며 어디로 좇아 이리로 스며든 것이냐. 그 뿌럭지, 그 씨알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본디 아주 없는 것이냐. 없는 것이라면 왜 무서워하며 왜 사위하느냐. 턱없이 무서워한다 치면 무서움 그 자체가 악이로구나. 까닭 없이 마음이 질리고 떨리니 말이다. 더더욱 해괴한 일은 없는 것을 가지고 무서워하는 게 아니냐.
한즉 악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거나 무서워하기 때문에 악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좋으신 하느님께서 이 좋은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
덜, 더, 아주 좋은 것을 당신이 만드셨다. 하나 지으신 분, 지음을 받은 것 모두가 다 좋은 것이다. 악은 그럼 어디서 오는 것이냐. 혹시 창조하실 때 나쁜 재료를 가지고 만들고, 다듬다가 좋게 될 수 있는 부분을 그냥 버려두신 것이나 아닌가. 이도 될 수 없는 일! 전능하신 분이 그토록 무능해서 악이 하나도 없게시리 전부를 변경할 수 없대서야? 더구나 그런 분이 하필이면 어느 부분만을 그리 만드시고, 그 전능은 매한가지인데 어째서 애당초 생기지도 못하게시리 막지는 못하셨을까. 그래 존재하는 것이 당신 뜻을 어겨서 생겨났단 말인가.
물질도 만일 영원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하느님께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묵혀두셨다가 나중에야 그것으로 무엇을 만드시려 했을까.
또 그분이 무엇을 만드실 생각이 울쩍 일어났다면 전능하신 분으로서 차라리 악을 없애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당신만이 전체 진리, 무한하신 지고선至高善으로 남아 계시지 않겠는가.
좋으신 분으로 좋은 것을 아니 만드는 것이 좋지 아니한 일이었다면 악한 물질일랑 걷어치워 무로 돌아가게 한 다음 좋은 물질을 지어 그것에서 모든 것을 왜 창조하지 않으셨는가.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물질을 빌려야만 좋은 것을 창조할 수 있다면야 어디 전능하신 분일 수가 있는가.’
처절한 내 가슴은 죽음의 공포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에 무너나는 듯 이런 생각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러하오나 가톨릭교회 안에 있는 당신의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님에 대한 신앙만은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직까지 많은 점에서 또렷하지 못하고 올바른 교리에서 벗어나는 데가 많았지만, 그래도 정신에서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젖어드는 것이었습니다.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