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곡

제1곡

단테는 35세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다가 언덕 위의 한 빛을 발견하고 이를 향해 나아갔으나 표범과 사자, 그리고 승냥이와 이리들에 길이 막혀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지옥 · 연옥 · 천국, 즉 삼계의 편력을 권하면서 스스로 길잡이가 되어 먼저 지옥으로 내려간다.

1한평생 나그넷길 반 고비1

올바른 길2 잃고 헤매던 나

컴컴한 숲3 속에 서 있었노라.

1. 반 고비: 35세. 인생을 70세로 잡고 그 절반에 이른 것을 말한다(시편 90,10 참고). 단테는 1265년에 태어났으므로 «신곡» 시현始現은 단테가 35세인 1300년 성금요일 전야였다(지옥편 2곡 1행 주). 이해에 단테는 페렌체의 집정관이었고 로마에서는 성년聖年이 개최되었다(지옥편 18곡 28행 주 참고).

2. 올바른 길: 덕의 길.

3. 숲: 정욕과 악덕과 모든 미혹의 부정한 길.

4 아, 호젓이 덧거칠고 억센 이 수풀

그 생각조차 새삼 몸서리쳐지거늘

아, 이를 들어 말함이 얼마나 대견한고!

7죽음보다 못지않게 쓰거운4 일이 있어도

내 거기에서 얻어 본 행복을 아뢰려노니

게서 익히 보아 둔 또 다른 것들도 나는 이야기하리라.

4. 쓰거운: ‘쓰다’의 방언. –편집자 주

10 어찌하여 그리로 들어섰는지 내 좋이 말할 길 없는 것은,

참다운 길을 내던져 버린 바로 그즈음

그토록 잠5이 깊었던 탓이어라.

5. 잠: 죄악의 단꿈에 취하여 저도 모르게 빛을 잃은 모양.

13

그러나 내가 어느 재6 기슭에 다다랐을 무렵

공포에 내 마음이 저릿저릿하던

그 골짜기가 끝나는 자리에

6. 재: 숲과 대조되는 산. 어두운 숲이 죄악에 물든 비참한 생활이라면, 밝은 재는 덕으로 가득한 행복한 생활을 의미한다.

16 우러러 드높이 나는 쳐다보았노라.

사람들을 온갖 길로 인도하는7

유성8의 빛살을 입은 멧부리9들을

7.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요한 11,9)

8. 유성: 태양. 당시는 태양도 유성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는 모습이므로 이제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신 성금요일이 밝았다.(요한 8,12)

9. 멧부리: 산등성이나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꼭대기. –편집자 주

19 그다지도 고달피 드새던 밤

내 마음의 호수에 잠겨 있던 무서움이

그제사 자그마치 가라앉았나니,

22 마치 숨 가빠하며 깊은 바다에서

언덕으로 헤어나온 사람들10

돌이켜 아슬아슬한 물을 들여다보듯

10. 사람들: 배가 부서지는 재앙을 만난 사람들.

25 아직도 도망칠 듯 내 마음은

산 사람을 한 번도 살려 보낸 적이 없는

그 길을 되살피러 돌아섰노라.

28 잠시 지친 몸을 쉬고 난 다음

쓸쓸한 고개로 다시 길11을 걷노라니

낮은 다리12가 항시 더욱 뻣뻣해지더라.

11. 길: 숲의 길. 즉 죄악의 생애인 죽음에의 길이다.

12. 낮은 다리: 산을 오를 때 체중이 더 아래 쪽에 있는 다리에 쏠리기 때문에 낮은 다리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31 겨우 오르막을 내디디려 할 찰나에

보라 알록달록한 가죽에 덧씌워져

방정맞고도 몹시 날랜 표범13 한 마리가

13. 표범: 그 아름다운 외관은 육욕의 상징. 표범 · 사자 · 이리는 육욕 · 교만 · 탐욕의 삼악三惡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숲 속의 사자가 그들을 물어뜯고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찢어 죽일 것입니다. 또 표범이 그들의 성읍마다 노리니 거기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나 갈갈이 찢길 것입니다.”(예레 5,6)

34 내 면전에서 떠나지 않은 채

앞에서 내 갈 길을 가로 막는 까닭에

몇 번이고 나는 되돌아가고 싶어 돌아섰노라.

37 때는 바야흐로 아침도 이른 새벽14

해는 불끈 저 별들15과 함께 떠올랐으니

별들이란 태초에 하느님의 사랑이

14. 이른 새벽: 1300년 성금요일의 새벽.

15. 별들: 양자리의 별들.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천지창조가 봄에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태양이 양자리에 들어가 그 운행을 시작하는 날인 춘분이 주님 탄생 예고의 날이며,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날이 되는 것, 즉 3월 25일이 성금요일인 경우가 이상적인 성금요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1300년의 성금요일은 4월 8일이었고, 단테는 교회력에 따라 이날을 신비로운 여행의 첫날로 택했다.

40이 해와 함께 움직이신 아름다운 것들,16

이리하여 때는 알맞고 계절은 아리따워

저 살갗 가죽에 무늬 있는 짐승과 맞서

16. 아름다운 것들: 천체(지옥편 34곡 137행 참고).

43

옳다 싶은 기회를 내 바라고17 있었으나,

사자18 한 마리의 몰골이 내 앞에 다가왔을 때

그만 무서움은 어쩔 수 없었노라.

17. 기회를 내 바라고: 표범을 쳐 이기기를 바람.

18. 사자: 오만의 표상.

46 대기조차 그로 인해 부르르 떨도록

번쩍 쳐든 머리, 미친 듯 주린 이놈은

나를 거슬러서 온 놈만 같더니라.

49

그리고 암이리19 하나 있어

그 말라빠진 꼴이 잔뜩 게걸스럽게 보였고,

벌써 많은 사람들20을 산 채로 후려 먹었을레라.

19. 암이리: 탐욕의 표상. 지상의 행복에 대한 탐욕은 사람의 마음에서 천상의 축복에 대한 희망을 앗아 간다.

20. 많은 사람들: 탐욕의 재앙과 화가 큼을 말한다.

52 그를 보고서 생겨난 무서움과

나는 기에 질려 버려

산마루에로의 희망을 잃고 말았노라.

55 마치 저 재물을 모아 즐기던 자가

그것을 잃어버릴 때가 이르자, 오직

그에 정신이 팔려 울고 아파하는 것처럼

58 달랠 수 없는 짐승도 내게 그처럼 하였으니

그는 나한테로 마주 달려오면서 차츰

태양이 침묵하는 데21까지 나를 밀어내리라.

21. 태양이 침묵하는 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 단테는 «신곡»의 많은 부분에서 시각적인 대상을 청각적인 표현으로 나타냈다.

61 내가 짙은 곳으로 파고들어 갈 때

오랜 침묵 때문에 목이 잠긴22 성싶은

무엇이 내 눈앞에 썩 나타나기에

22. 목이 잠긴: 단테 이전에, 특히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고전 연구를 등한시했음을 가리킨다.

64 허허벌판에서 내 그를 보자 그에게

나는 외쳤노라. “그대23 그림자이신가,

사람이신가, 누구시든 나를 살려 주시오.”

23. 그대: 베르길리우스 Publius Vergilius Maro (전 70~19년)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시인으로 그의 대표작은 «아이네이스 Aeneis»가 있다. 그는 이 작품이 퇴고가 부족하다며 이 작품을 불살라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네이스»에서는 아이네이아스의 사후 세계 방문과 이탈리아 건국 등 단테의 시와 관계가 깊은 시재詩材가 나온다. 따라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택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신곡»에서 그는 ‘인지’ 혹은 ‘철학’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67그이 내게 대꾸하되, “사람은 아니어도 옛날엔 나도 사람,

나의 부모님은 롬바르디아24 사람들,

두 분 다 그 고향이 만토바25였노라.

24. 롬바르디아: 이탈리아 북부의 나라 이름. 당시는 지금의 롬바르디아보다 넓은 지역이었다 한다.

25. 만토바: 롬바르디아의 지역 이름(지옥편 20곡 55행 이하 참고).

70더디게나마 내가 태어나기는 율리우스 치하26

거짓되고 망령된 제신諸神들의 시대27

어지신 아우구스투스28 아래 로마에서 나는 살았나니

26. 율리우스 치하: 베르길리우스의 출생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보다 30년 늦으며, 카이사르가 살해된 것은(전 44년) 베르길리우스가 26세 때다.

27. 제신들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시대.

28. 아우구스투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전 63년~후 14년). 베르길리우스는 이 황제 치하에서 활동했다.

73시인인지라, 뽐내던 일리온29이 다 타 버린 다음

트로이로부터 온 안키세스의 저

의로우신 아드님30을 읊조렸노라.

29. 일리온: 토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소 아시아의 해안 도시. 전쟁 때 성이 함락되어 화재로 소실되었다.

30. 74~75 안키세스의 저 의로우신 아드님: 아이네이아스.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자 트로이의 명장으로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아이네이아스의 표류와 그 후 로마 건국의 기초를 일으키기까지를 노래한다.

76 대체 너는 쓰거운 이런 데를 어째 왔느뇨?

어찌하여 일절 기쁨의 바탕이요 시작인

환락의 멧부리에 오르지 않느뇨?

79 나는 부끄러운 낯으로 그에게 대답하되,

“옳거니, 그대는 베르길리우스, 벅찬 강물인 양

말을 퍼부으시던 저 샘이시뇨?

82오, 모든 시인의 자랑이여, 빛이시여,

나의 오랜 공부, 그리고 그대의 글을

찾기에 바친 크고 큰 사랑이 값 있으라.

85그대 나의 스승이요, 가르침이니

내게 영예31를 이바지한 고운 붓끝은

오로지 그대에게서 받은 것뿐이외다.

31. 영예: 단테는 이미 «아이네이스» 이전에 «단시Canzoni»,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등으로 얻은 명성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연옥편 24곡 49행 이하 참고).

88 보소서, 나로 하여금 돌아서게 한 저 짐승을,

나의 힘줄과 핏줄을 떨게 만든 저놈에게서

이름난 현자여, 나를 도우소서.”

91그는 눈물 흘리는 나를 보고 대답하되,

“너 거친 숲정이를 벗어나려면

마땅히 딴 길32로 접어들을지라.

32. 딴 길: 죄의 두려움을 깨닫는 자는 덕의 생애를 마음에 그리지만, 그가 온전히 죄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완덕完德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빛의 고개에 올라가 은총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자는 먼저 지옥을 거쳐 죄에서 벗어나고, 연옥을 거쳐 상처를 깨끗이 씻어야만 한다.

94너를 울리는 요 짐승이란

누구든 제 갈 길을 못 가게 하나니

그를 막을 뿐만 아니라 죽게까지 하느니라.

97그 됨됨이가 심술궂고 악착스러워

걸근거리는33 원을 채워 본 적이 없어

먹이를 얻은 뒤에도 전보다 더 허기져 하느니라.

33. 걸근거리는: 음식이나 재물 따위를 얻으려고 자꾸 치사하고 구차스럽게 구는. –편집자 주

100 이놈과 같이 사는 짐승34들이 수두룩한데

마침내 사냥개35가 이를 고통스럽게 죽게 할 때까지

아직도 그놈들은 더욱더욱 많아지리라.

34. 이놈과 같이 사는 짐승: 탐욕에 따르는 모든 죄악.

35. 사냥개: 이리를 이길 사냥개의 표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기벨리니의 해석에 따르면 사냥개는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라는 단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군이나 영주를 표상한다. 그러나 단테가 1303년 지옥편 제1곡을 지을 때, ‘사냥개’에 해당할 만큼 찬사를 받을 성군이나 영주는 없었다. 구엘피의 해석에 따르면 사냥개는 복음적인 어느 교황 혹은 단테가 존경했던 베네딕토 11세 교황(1303~1304)을 표상한다. 그리고 보카치오 당시의 신비적 해석에 따르면 사냥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한다.

103 이 사냥개는 흙도 쇠도 말고

오직 슬기와 사랑과 덕으로 살리니,

그의 나라는 펠트로와 펠트로 사이36리라.

36. 펠트로와 펠트로 사이: 이곳이 어디인지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하늘과 하늘 사이’로 보는 학자도 있고 베네치아 근처의 펠트레 지역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106 새식시 카밀라37와 에우리알로와 투르누스, 그리고 니소38

그 때문에 상처를 입고 죽어간 저

가엾은 이탈리아의 구원이 그는 되리라.

37. 새식시 카밀라: 볼시인의 왕 메다포의 딸. 투르누스를 도와 트로이인과 싸웠으나 패하여 후에 그도 살해당한다.

38. 에우리알로, 투르누스, 니소: 에우리알로와 니소는 둘 다 트로이인으로 그 우정으로 이름이 높았다. 둘은 함께 아이네이아스를 도와 싸웠으나 전사한다. 투르누스는 루톨리인의 왕으로 아이네이아스와 싸워 전사한다(«아이네이스»7~12 참고).

109 그는 온 고을로 이리를 사냥 다니다가

드디어 그를 잡아 지옥에 넣으리니,

그리로부터 첫 질투39가 그를 내보낸 것이었느라.

39. 질투: 지옥 왕 루시퍼의 질투. 이 악마는 재앙을 모르고 생활하는 인간의 행복을 질투한다.

112 그러기에 내 너를 위해 잘 생각하고 마련하노니,

너는 나를 따르라. 내 너의 길잡이 되어

여기서 너를 영원한 곳40으로 이끌어 주리라.

40. 영원한 곳: 지옥.

115 거기 너 절망의 통곡을 듣고

제각기 두 번째 죽음41을 목놓아 우는

늙어빠진42 망령들의 괴로움을 보리라.

41. 두 번째 죽음: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 죽음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두 번째 죽음이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자들은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혼이 소멸되기를 바란다. “그 기간에 사람들은 죽음을 찾지만 찾아내지 못하고, 죽기를 바라지만 죽음이 그들을 피해 달아날 것입니다.”(묵시 9,6),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묵시 20,14)

42. 늙어빠진: 지옥에 빠진 지 아주 오래된.

118 그리고 그다음엔 언제고 한번 행복스러운

시민이 되리란 희망 때문에

불꽃 속에서 흡족해하는 이들43을 보리라.

43. 흡족해하는 이들: 때가 되면 천국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녔기 때문에 연옥 불의 괴로움을 달게 참고 받는 연옥의 영혼들.

121너 진정 그리로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훌륭한 영혼44이 하실 일이니,

그이와 함께 너를 버려두고 나는 떠나가리라.

44. 나보다 훌륭한 영혼: 베아트리체. 천계의 표상으로 시인을 천국으로 인도한다.

124내가 그의 법칙을 거스른 탓45으로

저 위의 왕이신 나라님이

그 나라에 내 들어가는 것을 꺼리시는 까닭이로다.

45. 법칙을 거스른 탓: 적극적으로 배반하지는 않았지만, 온전히 맞갖게 신을 섬기지 못한 것을 말한다(지옥편 4곡 38행 참고).

127 그가 명령하고 다스리시는 곳 어디든지

거기가 곧 그의 나라요 그의 보좌이니

복된지고 저기 뽑혀 간 자들이여.”

130 나는 그에게 “시인이여, 그대 알지 못하던

하느님 이름으로 그대에게 비옵나니

이 불행 이보다 큰 불행 면케 하소서.

133이리하여 금방 말씀하신 거기로 나를 데려가시어

베드로 사도의 문46을 보여 주소서.

또한 몹시 괴로워한다는 그들을 보여 주소서.”

46. 베드로 사도의 문: 연옥의 문.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에게서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단테는 베드로가 이 열쇠를 천사에게 맡겨 연옥 문을 열고 닫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136 이때 그가 일어서 가기에 나도 뒤를 따랐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