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곡

제23곡

단테가 마귀들에게 쫓겨 제6낭에 이르니 여기는 위선자들이 벌받는 곳이다. 그들은 겉은 화려하나 안은 무거운 납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닌다. 단테는 볼로냐의 두 수사修士와 이야기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가야파가 길 위에 못 박혀 있음을 본다.

1말없이 외로이 동무도 없이

하나는 앞에 또 하나는 뒤에

길 가는 수사들759 모양 우리는 걸었도다.

759. 수사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파의 작은 형제들 frati minori 수도자들. 길을 갈 때 어른 수사를 앞세우고 일렬로 서서 가는 것이 그들의 예법이다.

4 눈앞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나의 생각은

개구리와 생쥐의 이야기가 있는

이솝의 우화760로 향하더니라.

760. 이솝의 우화: 개구리와 생쥐가 길을 가다가 물가에 왔을 때, 딴 마음을 품은 개구리는 물을 건너기 전에 쥐에게 물속에서 헤엄칠 동안 힘들지 않게 서로 발을 잡아매자 하였다. 이리하여 발을 잡아맨 개구리가 물속 깊이 들어가니 쥐는 그만 죽어 버려 그 몸뚱이가 동동 물 위에 떴다. 때마침 한 마리의 솔개가 이를 보고 얼씨구나 하고 쥐를 끌어 올리니 살아 있는 개구리까지 따라 올라와 잡아먹혀 버렸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이솝 우화에서는 볼 수 없으나 중세 라틴어 저서에는 들어 있었다.

7 마음을 가다듬어 처음과 끝을 맞추어

보면 ‘지금’과 ‘시방’과의 비슷함도

마귀들이 서로서로 비슷한 것에는 당치 못할레라.761

761. 8~9 지금과 시방……: mo와 issa. 모두 ‘지금’이라는 뜻이다. 토스카나에서는 mo라 하고 롬바르디아에서는 issa라 한다. 이 한 구절은 칼카브리나가 알리키노를 해치려 하는 것이 개구리가 쥐를 해치려 하는 것과 같고, 그들이 함께 역청 속에 떨어진 것은 개구리와 쥐가 함께 솔개에게 잡아먹힌 것과 같다는 말.

10 그리고 한 생각이 딴 생각에서 일어남같이

저 생각에서 지금 한 생각이 떠올라 마침내

처음의 무서움을 갑절 더하더라.

13 나는 이리 헤아렸노라. “네놈이 우리로 인해

조롱을 당했기에 정녕코 스스로

몹시 능욕과 멸시를 당한 줄로 여기니,

16 혹시 저 몽니 궂은 맘씨에다가 화딱지마저

더해진다면 놈들이 우리를 뒤쫓아오리니, 그

모진 꼴이란 토끼를 물어뜯는 개보다 더 하리라.” 하고.

19 벌써 내 머리털이 무서움에 쭈뼛쭈뼛 일어서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줄곧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노라. “스승이여, 스승과 내가

22 이제 곧 숨지 않으면 나는 말레브란케가

무섭소이다. 놈들이 우리 뒤에 다가왔으니

저들을 상상만 하여도 벌써 몸에 닿는 듯하외다.”

25 그는 “내 설사 맑은 거울이라 해도 너의

속 모습을 찍는 것이 차라리 네

겉모양을 비추어 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리라.

28이제 너의 속뜻은 꼭 같은 행동 꼭 같은

모습과 함께 내 생각 안에 들어왔나니

나는 두 가지762 중에서 한 가지 꾀를 내었노라.

762. 두 가지: 너의 생각과 나의 생각.

31 오른쪽 벼랑이 비스듬히 기울어

우리는 다음의 구렁으로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상상했던 추격을 벗어나리라.”

34 그가 이런 꾀를 못 다 말씀했을 즈음

어느새 나는 놈들이 날개를 펴고 우리를

붙들고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옴을 보았노라.

37 그러자 내 길잡이는 마치 어머니가

시끄러움에 놀라 깨어, 아주 가까이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속옷 한 벌을 입은 채

40 제 몸보다는 아들을 더욱 걱정하여 이를

껴안고 멈추지 않고 달아나는 것처럼

부리나케 나를 꽉 붙드시더라.

43 그리하여 그는 탄탄한 언덕 한 꼭대기에서

그 아래 다음 구렁의 한쪽을 막는

깎아지른 바위로 곤두박질치셨나니,

46 뭍에서 물레방아의 바퀴를 돌리고자

홈통을 흐르는 물이 바퀴살에 맞부딪칠

그때의 빠른 줄달음질이라도

49내 스승이 나를 길벗이 아닌

제 자식인 양 가슴에 끌어안고 그

가장자리를 뛰어넘는 것을 견줄 수 없을레라.

52 그의 발이 아래 밑바닥에 닿자마자

저들은 우리를 위 고갯마루에 덮쳐

왔어도 거기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으니, 이는

55 놈들로 하여금 다섯째 구렁의 지킴으로

마련해 두신 높은 섭리가 거기서

빠져나올 힘을 온통 앗아 버린 때문이었나니라.763

763. 55~57 신의 섭리가 다섯째 구렁의 지킴이로 마련하신 마귀는 이 구렁을 빠져나올 수 없다.

58 훨씬 아래쪽에 무색옷을 입은 무리764

지치고 해쓱한 얼굴에 눈물 흘리며 느릿한

걸음으로 두루 다니는 것을 우리가 보니라.

764. 무리: 위선자의 무리.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마태 23,26–27)

61 그들은 클루니765의 수사들이 지니는

매무새로 겉옷을 입었는데

그 카푸초766가 눈까지 드리워졌더라.

765. 클루니: 독일 라인 강변의 도시인 쾰른. 이곳에 부유한 수도원이 있어 오만해진 수사들이 교황에게 진홍색 옷(추기경의 제복)을 입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교황은 크게 노하여 조복粗服과 커다란 모자를 착용하게 했다고 전한다.

766. 카푸초: 외투목에 달린 모자.

64 눈부실 만큼 겉은 금칠을 하였어도

안은 다 납뿐으로 어찌나 무겁던지

프리드리히가 입힌 것은 차라리 짚일레라.767

767. 프리드리히가 입힌 것은 차라리 짚일레라: 프리드리히 2세(지옥편 20곡 119행 참고) 황제. 황제는 반역자를 벌할 때 그를 발가벗겨 두꺼운 납옷을 입히고 큰솥에 넣어 끓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납으로 된 옷도 지옥에 있는 위선자들이 입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 무게가 밀짚과 같이 가볍다는 뜻.

67오, 영원토록 고달파야 할 망토여,

슬픈 통곡에 마음이 죄는 채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 왼쪽으로만 향하니라.

70그러나 무게 때문에 피로한 이 족속은

어찌나 더디 걷던지 우리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색다른 길벗이 나타나더라.

73이에 나는 길잡이에게 “그 한 일과 이름 따라

누가 누군지 알기 위하여 줄곧 거닐며

눈을 사방으로 굴리사이다.”

76 그러자 토스카나 말투를 알아들은 한 놈이

우리 등 뒤에서 고함치더라. “발을 멈춰라.

검은 하늘을 이렇듯 달리는768 자들아.

768. 이렇듯 달리는: 위선자들의 걸음이 늦기 때문에 보통으로 걷고 있는 시인들이 그들에겐 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79아마도 너 찾는 것은 내게서 얻어지리라.”

그래 나의 길잡이는 몸을 돌려 말하시되,

“멈춰 보았다가 저놈과 나란히 걸어가라.”

82 나는 우뚝 서서 문득 보았노라. 두 놈이 나와

함께 있고자 얼굴에 잔뜩 바쁜 뜻을 보이면서도

짐이며769 좁은 길 때문에 더디 오는 것을.

769. 짐이며: 무거운 납으로 된 옷.

85 바야흐로 다다르매 저들은 아무 말 없이

흘긴 눈으로770 나를 한참 들여다보다간

저희끼리 돌아서서 서로 말하되,

770. 흘긴 눈으로: 위선자는 삐뚤어진 마음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한다.

88 “이자들은 정녕 목구멍 힘으로771 사는가 보지.

죽은 놈들이라면 무슨 특권으로

무거운 옷을 입지 않고 간단 말인가?”

771. 목구멍 힘으로: 단테에 의하면 지옥의 모든 망령들은 육체의 기능은 그대로다. 다만 생명의 보람인 호흡은 하지 않는다(그러나 기침하는 일은 있다).

91 그리고 내게 말하더라. “슬픈 위선자들772

족속에게로 온 토스카나내기야, 너

누구인지를 말하기를 꺼리지 마라”

772. 슬픈 위선자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마태 6,16).

94 내 저들에게 “나는 아르노의 아름다운

강 언저리 굵은 도시773에서 태어나 자라났고

언제나 지녔던 몸뚱이와 함께 나는 있노라.

773. 굵은 도시: 피렌체.

97그러나 내 보아하니 이렇듯 근심이 볼을

흘러내리는 너희는 누구들이며 너희의

이렇듯 누부신 형벌은 대체 무엇이냐?”

100한 놈이 내게 대꾸하되, “납으로 된

귤빛 망토가 몹시 육중하여 그 무게가

이렇듯 저울들을774 삐걱대게 한단다.

774. 저울들을: 너무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으면 저울이 삐걱거리듯 무거운 납옷을 입은 죄인은 비명을 지른다.

103 우리는 놀아 먹던 수도자,775 볼로냐내기

나는 카탈라노, 저의 이름은 로데린고,776

둘이 다 그대 고장에서 붙잡혀 왔노라.

775. 놀아 먹던 수도자: frati godenti. 원래는 ‘동정녀 마리아의 기사단’이라 불렸다. 우르바노 4세 교황의 비준을 받아 1261년 볼로냐에서 창설된 수도회로, 여러 시의 알력을 조정하며, 쟁투를 하는 귀족들을 화해시키고, 학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차차 기강이 무너져 희락喜樂 수사란 별명이 붙기에 이르렀다.

776. 카탈라노, 로데린고: 둘 다 마리아 기사단 출신들. 1266년 기벨리니 당은 베네벤토에서 크게 패하고 피렌체의 구엘피 당이 세력을 만회하였다. 교황은 양 당 반목의 참극을 피하고자 볼로냐에서 구엘피 당의 카탈라노와 기벨리니 당의 로데린고를 초청하여 동시에 두 사람을 피렌체의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클레멘스 4세 교황의 뜻을 받아들여 구엘피 당을 위해서 힘을 다했다.

106 평화를 보전하기 위하여 다만 한 사람을

치우는 것이 거기 풍속이겄건만 ─ 지금도

가르딘고777 주변에서는 우리가 그런 자들로 보이나니라.”

777. 가르딘고: 피렌체 시의 일부. 구엘피 당의 수령 우베르티 가문의 집이 이곳에 있다. 카탈라노 일파 때문에 기벨리니 당은 추방되고 그 집은 불타 버렸다. 우베르티 가문의 집도 불타서 그 흔적이 당시 가르딘고 부근에 남아 있었다.

109 “오, 수사들이여, 너희 불행은.” 하고 시작했다가

나는 더 말하지 않았노라. 말뚝 세 개로

땅바닥에 못 박힌 한 놈778이 내 눈에 띄었음이러라.

778. 한 놈: 유대인의 대사제 가야파.

112 나를 보자 수염 속으로 긴 한숨을

내뿜으며 그는 온몸을 비틀었나니,

이것을 안 수도자 카탈라노가

115 나더러 이르되, “너 보는 바 요 못된 놈은

바리사이에게 인민을 위하여 한 사람을

죽음에 부쳐야 마땅하다고 권한 자니라.779

779. 116~117 인민을 위하여……: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49–50)

118너 보다시피 놈은 벌거숭이로

척 걸쳐 누웠으니 누구든 딛고 넘어가는 자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먼저 맛보아야 한다.

121요 모양으로 그의 장인780과 아울러 유대인들에게

나쁜 씨앗이었던 의회의 다른 놈들도

이 구렁창에서 또한 고통을 겪나니라.”

780. 장인: 대사제 한나스(요한 18,13; 루카 3,2 참고).

124이때 나는 베르길리우스가 영겁의 귀양에

이렇듯 십자가에 저주롭게 뻐드러져

있는 자를 이상히 생각함을 보았노라.781

781 124~126 베르길리우스가 성경의 이 일을 모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가 처음 지옥에 내려왔을 때는 아직 카야파가 이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127 이윽고 그는 수도자에게 이리 말하더라.

“내게 허락된 일이거든 오른쪽에

어느 구멍이 트였는지 고이 말하라.

130 그리하여 우리가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이 바닥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고자

구태여 검은 천사782들을 오게 할 필요가 없으리라.”

782. 검은 천사: 마귀.

133이에 그가 대답하되, “너 바라는 것보다는

아주 가까이 한 바위783가 있어 큰 둘레에서

뻗어 나와 험한 골짜기를 사뭇 건너 지르다가

783. 한 바위: 돌다리 절벽에서 뻗어 나와 열 개의 골짜기 위를 건너지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왜 이 돌다리만 부서졌는지는 불분명하다.

136여기에 이르러선 부서지고 이를 덮지

못하나니, 너희는 비스듬하고 바닥 위에

들뜬 무너진 데를 밟아 오를 수 있으리라.”

139길잡이는 머리를 숙이고 잠시 섰더니

이내 말씀하더라. “저기서 갈고리로

죄수들을 훔치던 놈784이 거짓말을 한 게로다.”

784. 140~141 갈고리로 죄수들을 훔치던 놈: 말라코다.

142 이러자 수사가 “내 일찍이 볼로냐에서

간특한 악마를 많이 들었어도 그중

저놈은 거짓말쟁이,785 또 그 아비라고 들었더니라.”

785. 거짓말쟁이: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요한 8,46)

145다음 길잡이는 약간 노기에 얼굴을

찌푸린 대로 겅정겅정 걸어가시기에

나도 짐 진 놈들을 떠나서

148 귀하신 발자취를 뒤따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