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곡
위선자의 골짜기를 나온 단테는 험한 길을 따라 제7낭에 이르러서 아래를 본다. 여기 무수한 독사가 있어 도둑놈들을 벌한다. 그중의 반니 푸치란 자가 있어 자기 내력을 말하고 피렌체의 재앙을 예언한다.
1젊으나 젊은 해의 한나절에
태양은 물병자리 아래 머리 빗는데786
밤787은 이미 남으로 돌아가누나.
787. 밤: 밤은 태양과 반대의 하늘에 있다(연옥편 2곡 4행 참고). 춘분이 가까워짐에따라 태양은 북으로, 밤은 낮으로 향하게 되고 차차 밤은 짧아진다.
서리는 땅 위에다 그 흰 누이788의
얼굴을 찍으려 해도 그 붓의 붓질이
그리 오래 남지는 못할 무렵에,
말꼴이 떨어지매 농부가 일어나
눈을 들어 새하얀 들판을 보자
스스로 허리를 탁 치고는789
집으로 돌아와선, 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이렁저렁 중얼거리다,
다시금 나가서 잠깐 사이에
13온 누리가 바뀌어진 모습을 보고
희망을 회복하여 작대를 짚고
밖으로 짐승 떼를 치러 가는 것처럼
16이처럼 스승은 내가 그의 그늘진 이마790를
보았을 때 나를 놀라게 하시었고
이처럼 또한 빨리 아픈 데다 약을 발라 주셨나니,
우리가 허물어진 다리에 이르렀을 때
길잡이는 내 산기슭에서 처음 보았던791
그 온화한 얼굴로 나를 대하시니라.
우선 그는 무너진 데를 자세히 살피고
혼자 무슨 좋은 꾀를 헤아린 다음
팔을 벌려 나를 꽉 붙들어 주시니라.
25그러고는 마치 일도 해내고 생각도 깊이 하며
항시 앞일을 미리 살피는 사람처럼
나를 한 바위의 꼭대기 쪽으로
28높이 들어 올리며 다른 바위를 보시고
이르시더라. “저리로 타고 올라가라. 그러면
너를 실을 만한지 먼저 알아보아라.”
31그것은 카파792를 입은 자들의 길은 아니더라.
아무튼 우리는 간신히 ─ 그이는 가볍게
나는 매달려 바위에서 바위로 오르니라.
만약 저 벼랑보다 이 벼랑 언저리가 더욱
짧지 않았던들 그이는 몰라도 나는
정녕코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37말레볼제는 전혀 낮고 낮은 샘의
어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만큼
어느 골짜기든 그 모양이
40한쪽은 두둑하고 또 한쪽은 낮은데,
마침내 우리는 맨 끝에 바위가
깨어진 마루에 다다랐더니라.
43오르자마자 나는 심장의 호흡이
몹시 가빠져서 다시 더 갈 수 없기에
꼭대기에 닿은 즉시로 주저앉았노라.
46스승이 이르시되, “이제야말로 너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때로다. 새깃 위에 앉아서나793
이불 밑에 누워선 이름을 내지 못하나니.
이것 없이 제 목숨을 바치는 자는
제 흔적을 공중의 연기나 물의 거품처럼
세상에 남길 따름인 것이니라.
52그런즉 너 나른해진 몸 때문에 약해지지
않았다면 일어나라. 온갖 싸움에 쳐 이기는
그 넋으로794 숨가쁨을 이겨 내라.
아직도 더 높이 올라야 할 사다리795가 있으니
이런 것들796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못하도다.
너 내 말을 알아듣거든 네게 이로운 것을 하라.”
796. 이런 것들: 지옥의 사다리. 지옥의 사다리를 벗어나 죄로부터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노력하여 더 나아가 더러운 상처를 연옥에서 정화하고, 비로소 완전한 덕과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
이때 나는 몸을 세워 스스로 겪는 것
보다는 한결 호흡이 나아진 듯 꾸며서
말했노라. “가소서. 전 힘차고 용감하외다.”
61돌다리를 건너서 우리가 접어든 길은
울퉁불퉁 좁고도 사나운데
이전의 그것보다 훨씬 힘이 들더라.
64피로를 행여 보일세라 나는 이야기하며
가노라니 다음 구렁797 속에서 한 소리 ─
말이 되기엔 부족한 소리가 솟아 나오더라.
이미 나는 거기 걸려 있는 홍예문 뒤에
있었는데 그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해도
어쨌든 말하는 자는 화가 치민 것 같더라.
70나는 아래로 숙여 보았으나 살아 있는 눈들798은
어둠 때문에 밑바닥까지 닿지 않더라.
그리하여 “스승이여, 다음 둘레799로
799. 다음 둘레: 제7낭과 제8낭 사이의 언덕.
가시어 다리를 내려 주소서, 나는
여기서는 듣기는 하되 알아듣지 못하옵고
굽어보아도 아무것도 분간치 못하옵니다.”
76그가 말하시되, “실행밖에는 내 너에게
다른 대답을 줄 수 없나니, 무릇 좋은
청이면 말 없는 행실이 따라야 하느니라.”
79여덟째 언덕에 이어지는 다리의
머리에서 우리가 내려왔을 때에야
구렁은 내 앞에 훤히 드러났으니,
82거기 그 안에 나는 뱀800의 징글징글한
무더기를 보았는데 그 흉측한 꼴이란
지금 생각만 하여도 내 피가 거슬러 흐르도다.
리비아 사막801인들 그 모래를 자랑 못 할지니
무자수에 나는 뱀, 흙 파는 뱀, 그리고
쌍두사雙頭蛇에, 점박이 독사가 난다 한들
통틀어 에티오피아며 홍해 언저리802에
있는 그 모두를 합친대도 이러한
역질과 흉악한 것을 보여 주지 못할레라.
이 혹독하고 극히 처참한 무리 가운데에
벌거벗고 벌벌 떠는 족속이 있어, 숨을 데도
비취 구슬803도 바랄 길 없이 달려가더라.
그들의 손은 뒤로 젖혀져 뱀들로 묶이었고
허리론 꼬리며 대가리며 삐져나왔는데
그것들은 이마에 서리고 있더니라.
97헌데 보라. 우리들 언덕에 가까이 있는
한 놈에게로 뱀 하나가 날아오더니
목이 어깨와 이어지는 거기를 뚫어 버리더라.
100“O자와 I자804를 제아무리 날래게 쓴다 해도
저놈이 불붙고 타는 이내 고스란히
재가 되어 떨어지는 것만 같지 못하리니
재는 또 땅에 으스러졌다가 도로 다시
제 스스로 돌돌 뭉쳐져서 갑자기
아까 몸으로 돌아가더라.
106위대한 현자들805이 이리 말씀하시었나니
가로되, 피닉스806가 죽어서 다시 살아나기는
오백 년이 가까워 올 무렵이라고.
806. 피닉스: 불사조. 이집트의 전설에 나오는 독수리를 닮은 영조靈鳥. 500년마다 스스로 몸을 태워 그 재 속에서 재생한다고 한다.
한평생 풀이나 곡식은 먹지 아니하고
향과 아모모807의 물방울만 먹고 살다가
죽을 때 보금자리는 나르드와 몰약이라더니.
악마의 힘808으로 땅에 끌리거나
아니면 사람의 숨통을 꽉 막는809 힘에
못 견디어 엎어진 사람이 어찌된 영문을
809. 숨통을 꽉 막는: 심장과 두뇌 사이의 통로를 막아 생기의 활동을 방해한다.
모르고 일어나서, 그 겪은 아픔 때문에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다만 어리둥절할 뿐
그저 두리번거리며 탄식하는 것처럼
118엎드렸다 일어난 죄인도 그러하더라.
복수를 위하여 이렇듯 매질을 퍼부으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오, 얼마나 지엄하신고!
121문득 길잡이가 그에게 누구였음을 물으매
그는 대답하되, “내810 토스카나에서 이 사나운
목구멍811으로 떨어진 지는 그리 오래지 않도다.812
811. 122~123 사나운 목구멍: 골짜기.
812. 그리 오래지 않도다: 약5년 전. 반니가 형을 받은 것은 1296년.
내 차라리 노새813였으니 사람보다는
짐승의 생활이 좋았노라. 난 반니 푸치라는
짐승. 그러기에 피스토이아814가 제격인 굴이리라.”
814. 피스토이아: 죄악의 도시(지옥편 25곡 10행 이하 참고).
나는 길잡이에게 “도망치지 말라 하시고 놈에게
물으소서, 무슨 죄가 그를 여기다가 처박았는지.
그가 피와 분노의 인물815임을 내 보았음이니이다.”
저 죄인이 말을 듣자 아닌 체하기는커녕
마음과 얼굴을 내 편으로 향하여
슬픈 부끄러움에 물들여진 다음
133말하되, “너 나를 보고 있는 이 비참 속에서
내 너를 만나게 된 일은 차라리 내가
저 세상에서 죽은 때보다 한결 아프구나.816
네가 무엇을 묻든 나는 거절할 수 없나니,
이렇듯 내가 깊은 데에 빠져 있기는 옛날
찬란한 성물聖物의 제의실의 도둑817이었던 탓이로다.
그래도 그것은 남에게 잘못 둘러씌워졌나니
너 이 캄캄한 고장을 벗어나거든
이런 꼴을 본 것이 기꺼움이 못 되도록
142귀 기울여 내 전하는 말을 들으라.
피스토이아818에서 네리819를 빼앗기고
다음엔 피렌체820가 백성과 풍속을 새로 하리라.
819. 네리: 흑당.
820. 피렌체: 피스토이아와 반대로 흑당이 세력을 잡아 1302년 백당을 추방했다.
마르스821는 흐린 구름에 싸여 있는
발 디 마그라822에서 열기823를 잡아당겨
맵고 모진 회오리바람824으로
822. 발 디 마그라: 마그라 강이 흐르는 골짜기. 루니지아에 있다(지옥편 20곡 47행 참고).
823. 열기: 번갯불. 흑당의 수령으로 용감한 후작 모로엘로 말라스피나를 가리킨다. 1302년 그는 피스토이아에서 추방당한 흑당에 피렌체와 루카의 흑당을 합병해서 피스토이아를 공격했다.
824. 회오리바람: 전운戰雲 또는 흑당의 군사들.
피체노 벌825에서 싸우리니, 그로 인하여
이자가 별안간 안개를 찢고 비앙코826는
모조리 이에 맞아서 넘어가리라.
826. 비앙코: 백당.
내 이를 일러두노니, 너 아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