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곡
반니 푸치는 욕스러운 주먹을 휘두르며 신을 모욕한다. 단테는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며 피렌체의 도둑놈들이 뱀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1도둑놈은 제 말 끝에 두 손을 들어 손가락 사이로
엄지손가락질827을 하며 소리치더라. “하느님아,
이걸 받아라. 내 네게 이걸 주노라.” 하고.
이때부터 여기선 뱀들이 내 벗이었나니
한 마리는 바로 “네놈 말이란 딱 싫다.”
는 듯 그의 모가지를 칭칭 감았고,
7또 한 마리는 팔에 휘감기어
앞으로 꽁꽁 묶어 버렸기 때문에
그놈은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더라.
10아, 피스토이아828여, 피스토이아여, 너 악을
지음에는 네 조상829을 앞서면서 어찌
버젓이 재가 되어 스러지지 못하느냐?
829. 네 조상: 전설에 의하면 피스토이아는 로마의 반역 장군 카틸리나(전 62년 사망)의 패전 후 그의 잔당이 건설한 것이라 한다.
지옥의 어두운 둘레를 다 돌았어도 이토록
하느님께 거만스러운 넋은 보지 못했나니
테베의 성벽에서 거꾸러진 자도 이만은 못하리라.
16놈은 뺑소니쳐 다시는 말이 없었으되 나는
또 보았노라. 켄타우로스830가 미쳐 날뛰며 “어디냐,
시어빠진 놈은 어디냐.”고 호통치며 오는 것을.
생각건대 마렘마831엔들 사람의 몰골이
되기 시작하는 그 볼기짝 위에 저놈이 싣고
있는 그만큼 많은 독사는 있지 않으리라.
그놈 어깨 위 정수리 뒤에는 한 마리씩
용이 날개를 벌리고 도사리고 앉아서
어느 놈이고 닥치는 대로 불을 붙여 주더라.
25내 스승이 이르시되, “이건 카쿠스832란 놈인데
아벤티노 산의 바위 밑에서 몇 번이고
피의 호수833를 만든 놈이니라.
833. 피의 호수: 카쿠스가 훔쳐 잡아먹은 짐승의 피가 많았음을 말한다.
이놈이 제 형제들834과 함께 한길로 가지
않음은 이웃에 있던 짐승 떼를
몰래 훔쳐 낸 까닭이니라.
비뚤어진 버르장머리는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뜸질에 멎어지기는 하였나니,
때린 게 백이건만 느낀 것은 열835이었느니
이같이 그가 말씀하시며 지나가시는데
바로 우리 아래로 세 영혼836이 왔어도 놈들이
“너희가 누구냐.”고 외치기까지는
나나 스승이나 그런 줄을 몰랐노라.
이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그치었고
다만 저놈들에게만 정신을 주었었노라.
40나는 저들을 알지 못하였어도 어느 때
흔히 그러한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또 하나를 부르며 말하더라.
43“찬파837야 너 있는 곳이 어디냐.”고.
이내 나는 길잡이가 정신 차리시도록
내 손가락을 턱으로부터 코에다 대니라.838
838. 내 손가락을 턱으로부터 코에다 대니라: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어 조용히 하라고 하는 손짓. –편집자 주
읽는 이여, 이제 그대는 나의 말하는 바를
믿기에 더딜지라도 괴이할 게 없도다.
그를 본 나조차 곧이듣기 힘든 것을.
49저것들 쪽으로 내 눈썹을 치올리고 있을 즈음
발 여섯 돋힌 뱀839 하나가 한 놈 앞으로
날더니 그만 통째로 그놈을 감아 버리더라.
가운데 발로 배때기를 휘어 감고
앞발로는 발을 움키더니
이쪽저쪽 볼따구니를 물어 제끼더라.
55뒷발들은 정강이를 서리고
꼬리는 사타구니 사이로 집어넣어
허리를 거쳐서 뒤로 내뻗치더라.
58나무에 수염을 얽어매는 담쟁이라도
설마 이 징그러운 짐승처럼 제 몸으로
남의 삭신을 이렇듯 감아 붙이진 못할레라.
61문득 그것들은 뜨거운 초와 같이
서로 엉기어 빛깔을 뒤섞어 놓으며
이놈 저놈840 할 것 없이 이전의 모습은 이미 없더라.
그것은 마치 불꽃 붙은 종이가 처음엔
누르스름한 빛이 나다가 미처 시꺼멓게
되기도 전에 흰 바탕이 스러지는 것 같더라.
67다른 두 놈이 이것을 보고는 저마다 소리치되
“아하, 아뇰로841야, 너 어인 변화인고.
허허, 넌 이제 둘도 하나도 아니로구나!”
이미 대가리 둘이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두 몰골이 한데 얼버무려져 우리에게
보일 때는 둘이란 없어진 셈이더라.
73사지로부터는842 두 팔 쑥 불거져
정강이 · 종아리 · 배 · 가슴이야말로
일찍이 보지 못하던 몸뚱어리로 되니라.
이전의 모습이라곤 거기 말끔히 씻기운 채
뒤바뀐 형상은 둘이로되 어느 것도 아니게
뵈는 것이 그대로 느린 걸음으로 가 버리더라.
79여름 한더위의 커다란 채찍843 밑에
도마뱀이 울타리를 옮겨 가고자 한길로 가로
건너가노라면 번개처럼 보이듯이
이같이 납빛에 후추씨처럼 검은
작은 뱀844이 잔뜩 골을 내어
두 놈의 배를 겨냥하고 오더니라.
그중 한 놈의 처음으로 영양을 취하는
그 자리845를 사뭇 꿰뚫고는 그놈 앞에
몸을 쭉 뻗치고 떨어져 버리더라.
뚫린 놈은 이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잠이나 열병에 취한 듯이
다리가 굳어진 채 하품만 하더라.
91그놈은 뱀을, 뱀은 그놈을 마주 보는데
저놈은 상처에서 이놈은 아가리에서
힘차게 연기를 뿜는 통에 연기가 서로 맞부딪치더라.
94가엾은 사벨로와 나시디오를 들어
이야기할 그 마당에 루카누스846는 입을
다물었으니 이제 내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진저.
오비디우스847여, 카드모스848와 아레투사849에 대해 말을 마라.
그가 사나이를 뱀으로, 계집을 샘(泉)으로
읊조렸대도 나는 그를 시새움하지 않나니,
848. 카드모스: 테베의 건설자. 후에 여러 나라를 표랑하다 뱀이 되었다. 그의 아내가 이를 보고 “너희 신들이여, 나의 카드모스를 이전처럼 돌려다오. 아니면 나를 그의 모습으로 바꿔다오.”라고 하여 그도 뱀이 되었다(오비디우스 «변신» 4,563~603).
849. 아레투사: 디아나 신을 섬기는 여신의 하나. 강의 신 알페이오스에게 쫓기게 되자 디아나에게 기도하여 샘으로 변했다(«변신» 5,572~661).
그가 됨됨이 두 낱을 감쪽같이
바꾼게 아니어서 거죽만 바뀐
안은 그대로 두 낱인 까닭이로다.850
둘이 다 마주쳐짐은 이러하였나니 곧
뱀은 꽁지를 잘라 꼬챙이를 이루었고
다친 놈은 두 다리를 한데 겹쳐 있더라.
106두 다리, 두 종아리가 절로
착 달라붙어서 이어진 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금세 아무 흔적도 없어졌더라.
109갈라진 꼬리는 없어진 딴 놈의 모양을
지녔는데 제 살결은 부드럽고
남의 살은 딱딱히 굳어졌더라.851
겨드랑 속으로 양팔이 들어감을 내
보았는데 그게 졸아들어 갈수록 몽톡하던
짐승의 두 다리가 자꾸만 길어지더라.852
다음 뒷발들은 한데 뭉쳐 사나이가
감추는 그 삭신853이 되어 버리고 이리하여
불쌍한 놈의 그것은 두 쪽으로 갈라지더라.
또 다른 빛깔로 연기가 이놈 저놈을
뒤덮고 한 놈에겐 털을 덮어씌우고
또 한놈에게선 털을 뽑아낼 동안
121이놈은 일어서고 저놈은 자빠지더라.
또한 신을 배반한 안광854을 희번덕이며
그 아래서 저마다의 몰골을 바꾸더라.
섰던 놈이 관자놀이께로 얼굴을 실룩거리매
그리로 밀린 살점에서 귀가 돋아나
반반하던 볼 위에 오똑하더라.
127뒤로 내닫지 않은 채 그냥 있는 살점은
그 나머지로 낯에 코를 만들고
알맞을 만큼 두꺼운 입술을 지으니라.
130자빠진 놈은 낯짝을 앞으로 내밀고
뿔을 움츠리는 달팽이처럼
귀를 대가리께로 빨아들이더라.855
먼저는 한 잎으로도 곧잘 말하던
혓바닥이 찢어지고 다른 두 쪽난
혀는 겹쳐진 다음 연기가 멈추어지더라.856
짐승이 되어 버린 영혼이
휘파람을 불며 골짜기로 도망치고
뒤엣놈은 쫑알대며 침을 뱉더라.857
얼마 뒤 그놈은 갓 생긴 어깨를 돌려서
딴 놈858에게 말하더라. “내가 한 그대로
부오소859가 이 길로 기어서 달려갔으면…….”
859. 부오소: 피렌체의 도적. 여기서는 뱀이 된 놈을 말한다.
이리하여 나는 일곱째 모래 바탕860이 바뀌고
뒤바뀌는 것을 보았나니, 여기 내 붓대가
적이 껄끄러울지라도 서투름을 용서하시라.
비록 내 눈이 얼마쯤 흐려졌고 마음도
무던히 산란해지긴 하였어도
저놈들이 꽉 숨어 뺑소니치지는 못했나니,
148나는 푸초 시안카토861임을 분명히
알았노라. 먼저 왔던 세 놈 패 중에
바뀌지 않은 놈은 그놈 하나뿐이었고
또 한 놈862은, 가빌레여, 네가 우는 바로 그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