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곡

제25곡

반니 푸치는 욕스러운 주먹을 휘두르며 신을 모욕한다. 단테는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며 피렌체의 도둑놈들이 뱀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1

도둑놈은 제 말 끝에 두 손을 들어 손가락 사이로

엄지손가락질827을 하며 소리치더라. “하느님아,

이걸 받아라. 내 네게 이걸 주노라.” 하고.

827. 엄지손가락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끼고 주먹을 쥐는 것은 13세기부터 내려오는 상스러운 욕이다.

4

이때부터 여기선 뱀들이 내 벗이었나니

한 마리는 바로 “네놈 말이란 딱 싫다.”

는 듯 그의 모가지를 칭칭 감았고,

7

또 한 마리는 팔에 휘감기어

앞으로 꽁꽁 묶어 버렸기 때문에

그놈은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더라.

10

아, 피스토이아828여, 피스토이아여, 너 악을

지음에는 네 조상829을 앞서면서 어찌

버젓이 재가 되어 스러지지 못하느냐?

828. 피스토이아: 피스토이아와 피사는 기벨리니 당의 근거지로 단테는 당쟁을 몹시 증오하여 이들 시를 지나치게 공격한다.

829. 네 조상: 전설에 의하면 피스토이아는 로마의 반역 장군 카틸리나(전 62년 사망)의 패전 후 그의 잔당이 건설한 것이라 한다.

13

지옥의 어두운 둘레를 다 돌았어도 이토록

하느님께 거만스러운 넋은 보지 못했나니

테베의 성벽에서 거꾸러진 자도 이만은 못하리라.

16

놈은 뺑소니쳐 다시는 말이 없었으되 나는

또 보았노라. 켄타우로스830가 미쳐 날뛰며 “어디냐,

시어빠진 놈은 어디냐.”고 호통치며 오는 것을.

830. 켄타우로스: 지옥편 12곡 56행 주 참고.

19

생각건대 마렘마831엔들 사람의 몰골이

되기 시작하는 그 볼기짝 위에 저놈이 싣고

있는 그만큼 많은 독사는 있지 않으리라.

831. 마렘마: 토스카나 지방 해안 일대의 뱀이 많던 습지(지옥편 13곡 7행 주 참고). 뱀이 너무 많아 그 근처에 세워진 훌륭한 수도원이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22

그놈 어깨 위 정수리 뒤에는 한 마리씩

용이 날개를 벌리고 도사리고 앉아서

어느 놈이고 닥치는 대로 불을 붙여 주더라.

25

내 스승이 이르시되, “이건 카쿠스832란 놈인데

아벤티노 산의 바위 밑에서 몇 번이고

피의 호수833를 만든 놈이니라.

832. 카쿠스: 불카누스 신의 아들로 아벤티노 굴 속에 살던 거인 도적. 헤라클레스가 게리온의 소 몇 마리를 빼앗아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로 돌아가다 이 산 가까이 와서 잠을 자는데, 카쿠스가 이를 훔쳐 발자취를 속이고자 꼬리를 끌고 뒷걸음질해서 갔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를 알아 내어 카쿠스를 죽였다(«아이네이아스» 8,193–267). 카쿠스는 원래 켄타우로스족이 아니지만 단테가 이를 바꿔 놓았다.

833. 피의 호수: 카쿠스가 훔쳐 잡아먹은 짐승의 피가 많았음을 말한다.

28

이놈이 제 형제들834과 함께 한길로 가지

않음은 이웃에 있던 짐승 떼를

몰래 훔쳐 낸 까닭이니라.

834. 제 형제들: 다른 켄타우로스는 모두 제7환에 있다(지옥편 12곡 55행 이하). 그러나 카쿠스만은 도둑이라 제8환에 있다.

31

비뚤어진 버르장머리는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뜸질에 멎어지기는 하였나니,

때린 게 백이건만 느낀 것은 열835이었느니

835. 느낀 것은 열: 헤라클레스는 카쿠스를 수없이 때렸으나 그는 열 대도 맞지 못하고 죽었다. 베르길리우는 그가 교살되었다고 기록했다.

34

이같이 그가 말씀하시며 지나가시는데

바로 우리 아래로 세 영혼836이 왔어도 놈들이

“너희가 누구냐.”고 외치기까지는

836. 세 영혼: 아뇰로(68행) ⋅ 부오소(141행) ⋅ 푸초(148행).

37

나나 스승이나 그런 줄을 몰랐노라.

이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그치었고

다만 저놈들에게만 정신을 주었었노라.

40

나는 저들을 알지 못하였어도 어느 때

흔히 그러한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또 하나를 부르며 말하더라.

43

“찬파837야 너 있는 곳이 어디냐.”고.

이내 나는 길잡이가 정신 차리시도록

내 손가락을 턱으로부터 코에다 대니라.838

837. 찬파: 피렌체의 도나티 가문 출신 도적으로 구엘피 당에 속했다고 전한다.

838. 내 손가락을 턱으로부터 코에다 대니라: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어 조용히 하라고 하는 손짓. –편집자 주

46

읽는 이여, 이제 그대는 나의 말하는 바를

믿기에 더딜지라도 괴이할 게 없도다.

그를 본 나조차 곧이듣기 힘든 것을.

49

저것들 쪽으로 내 눈썹을 치올리고 있을 즈음

발 여섯 돋힌 뱀839 하나가 한 놈 앞으로

날더니 그만 통째로 그놈을 감아 버리더라.

839. 뱀: 찬파가 변형된 것.

52

가운데 발로 배때기를 휘어 감고

앞발로는 발을 움키더니

이쪽저쪽 볼따구니를 물어 제끼더라.

55

뒷발들은 정강이를 서리고

꼬리는 사타구니 사이로 집어넣어

허리를 거쳐서 뒤로 내뻗치더라.

58

나무에 수염을 얽어매는 담쟁이라도

설마 이 징그러운 짐승처럼 제 몸으로

남의 삭신을 이렇듯 감아 붙이진 못할레라.

61

문득 그것들은 뜨거운 초와 같이

서로 엉기어 빛깔을 뒤섞어 놓으며

이놈 저놈840 할 것 없이 이전의 모습은 이미 없더라.

840. 이놈 저놈: 사람의 빛도 뱀의 빛도.

64

그것은 마치 불꽃 붙은 종이가 처음엔

누르스름한 빛이 나다가 미처 시꺼멓게

되기도 전에 흰 바탕이 스러지는 것 같더라.

67

다른 두 놈이 이것을 보고는 저마다 소리치되

“아하, 아뇰로841야, 너 어인 변화인고.

허허, 넌 이제 둘도 하나도 아니로구나!”

841. 아뇰로: 브루넬레스키 가문 출신으로 권력을 이용해서 공금을 횡령했다.

70

이미 대가리 둘이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

두 몰골이 한데 얼버무려져 우리에게

보일 때는 둘이란 없어진 셈이더라.

73

사지로부터는842 두 팔 쑥 불거져

정강이 · 종아리 · 배 · 가슴이야말로

일찍이 보지 못하던 몸뚱어리로 되니라.

842. 사지로부터는: 용의 앞발과 사람의 양팔이 합해져서 기괴한 두 팔이 생겼다.

76

이전의 모습이라곤 거기 말끔히 씻기운 채

뒤바뀐 형상은 둘이로되 어느 것도 아니게

뵈는 것이 그대로 느린 걸음으로 가 버리더라.

79

여름 한더위의 커다란 채찍843 밑에

도마뱀이 울타리를 옮겨 가고자 한길로 가로

건너가노라면 번개처럼 보이듯이

843. 채찍: 여름날의 열기.

82

이같이 납빛에 후추씨처럼 검은

작은 뱀844이 잔뜩 골을 내어

두 놈의 배를 겨냥하고 오더니라.

844. 작은 뱀: 카발칸타 (151행 주 참고)가 변형된 것.

85

그중 한 놈의 처음으로 영양을 취하는

그 자리845를 사뭇 꿰뚫고는 그놈 앞에

몸을 쭉 뻗치고 떨어져 버리더라.

845. 85~86 한 놈의 처음으로……: 한 놈은 부오소를 말하고, ‘처음으로 영양을 취하는 자리’는 태아가 모체에서 영양을 취하는 자리, 즉 배꼽을 말한다.

88

뚫린 놈은 이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잠이나 열병에 취한 듯이

다리가 굳어진 채 하품만 하더라.

91

그놈은 뱀을, 뱀은 그놈을 마주 보는데

저놈은 상처에서 이놈은 아가리에서

힘차게 연기를 뿜는 통에 연기가 서로 맞부딪치더라.

94

가엾은 사벨로와 나시디오를 들어

이야기할 그 마당에 루카누스846는 입을

다물었으니 이제 내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진저.

846. 루카누스: «파르살리아»의 저자. «파르살리아»에 따르면, 카토의 부하인 사벨로는 리비아 사막에서 ‘세프스’란 뱀에게 물려 그 독에서 생긴 체내의 고열로 타서 재가 되어 죽었고, 나시디오는 ‘프레스텔’이란 뱀에게 물려 온몸이 부어올라 입고 있던 갑옷이 터져서 죽었다(지옥편 4곡 90행; «파르살리아» 9,761 이하 참고).

97

오비디우스847여, 카드모스848와 아레투사849에 대해 말을 마라.

그가 사나이를 뱀으로, 계집을 샘(泉)으로

읊조렸대도 나는 그를 시새움하지 않나니,

847. 오비디우스: 지옥편 4곡 90행 참고.

848. 카드모스: 테베의 건설자. 후에 여러 나라를 표랑하다 뱀이 되었다. 그의 아내가 이를 보고 “너희 신들이여, 나의 카드모스를 이전처럼 돌려다오. 아니면 나를 그의 모습으로 바꿔다오.”라고 하여 그도 뱀이 되었다(오비디우스 «변신» 4,563~603).

849. 아레투사: 디아나 신을 섬기는 여신의 하나. 강의 신 알페이오스에게 쫓기게 되자 디아나에게 기도하여 샘으로 변했다(«변신» 5,572~661).

100

그가 됨됨이 두 낱을 감쪽같이

바꾼게 아니어서 거죽만 바뀐

안은 그대로 두 낱인 까닭이로다.850

850. 100~102 지금까지 말한 여러 가지 이상한 이야기라도, 사람과 뱀, 즉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연이 상대해서 변형하는 신기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103

둘이 다 마주쳐짐은 이러하였나니 곧

뱀은 꽁지를 잘라 꼬챙이를 이루었고

다친 놈은 두 다리를 한데 겹쳐 있더라.

106

두 다리, 두 종아리가 절로

착 달라붙어서 이어진 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금세 아무 흔적도 없어졌더라.

109

갈라진 꼬리는 없어진 딴 놈의 모양을

지녔는데 제 살결은 부드럽고

남의 살은 딱딱히 굳어졌더라.851

851. 109~111 둘로 갈라진 뱀의 꼬리는 부오소의 발과 다리가 된다.

112

겨드랑 속으로 양팔이 들어감을 내

보았는데 그게 졸아들어 갈수록 몽톡하던

짐승의 두 다리가 자꾸만 길어지더라.852

852. 113~114 몽톡하던 짐승의……: 뱀의 짧은 앞발이 늘어나서 사람 팔이 된다.

115

다음 뒷발들은 한데 뭉쳐 사나이가

감추는 그 삭신853이 되어 버리고 이리하여

불쌍한 놈의 그것은 두 쪽으로 갈라지더라.

853. 삭신: 생식기. –편집자 주

118

또 다른 빛깔로 연기가 이놈 저놈을

뒤덮고 한 놈에겐 털을 덮어씌우고

또 한놈에게선 털을 뽑아낼 동안

121

이놈은 일어서고 저놈은 자빠지더라.

또한 신을 배반한 안광854을 희번덕이며

그 아래서 저마다의 몰골을 바꾸더라.

854. 안광: 눈만은 변하지 않고 서로 눈총을 주며 얼굴을 변화시킨다. 이하는 뱀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로 변하는 모양.

124

섰던 놈이 관자놀이께로 얼굴을 실룩거리매

그리로 밀린 살점에서 귀가 돋아나

반반하던 볼 위에 오똑하더라.

127

뒤로 내닫지 않은 채 그냥 있는 살점은

그 나머지로 낯에 코를 만들고

알맞을 만큼 두꺼운 입술을 지으니라.

130

자빠진 놈은 낯짝을 앞으로 내밀고

뿔을 움츠리는 달팽이처럼

귀를 대가리께로 빨아들이더라.855

855. 130~132  사람의 얼굴이 뱀의 얼굴로 변한다.

133

먼저는 한 잎으로도 곧잘 말하던

혓바닥이 찢어지고 다른 두 쪽난

혀는 겹쳐진 다음 연기가 멈추어지더라.856

856. 133~136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뱀의 혀는 두 쪽이라고 믿었다.

136

짐승이 되어 버린 영혼이

휘파람을 불며 골짜기로 도망치고

뒤엣놈은 쫑알대며 침을 뱉더라.857

857. 침을 뱉더라: 부오소를 저주하여 능욕하는 뜻으로 침을 뱉은 것인지, 또는 다만 아직 말을 할 수 없어 침을 뱉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39

얼마 뒤 그놈은 갓 생긴 어깨를 돌려서

딴 놈858에게 말하더라. “내가 한 그대로

부오소859가 이 길로 기어서 달려갔으면…….”

858. 딴 놈: 푸초 시안카토.

859. 부오소: 피렌체의 도적. 여기서는 뱀이 된 놈을 말한다.

142

이리하여 나는 일곱째 모래 바탕860이 바뀌고

뒤바뀌는 것을 보았나니, 여기 내 붓대가

적이 껄끄러울지라도 서투름을 용서하시라.

860. 모래 바탕: 제7낭의 죄인들을 모멸하여 부르는 말이다. 또는 제7낭의 바닥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145

비록 내 눈이 얼마쯤 흐려졌고 마음도

무던히 산란해지긴 하였어도

저놈들이 꽉 숨어 뺑소니치지는 못했나니,

148

나는 푸초 시안카토861임을 분명히

알았노라. 먼저 왔던 세 놈 패 중에

바뀌지 않은 놈은 그놈 하나뿐이었고

861. 푸초 시안카토: 피렌체의 길리가이 가문 출신이라고 한다. ‘시안카토’는 ‘절름발이’란 뜻이다. “도적질하러 갈 때는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도망치기에 불편하더라.” –벤베누티 주

151

또 한 놈862은, 가빌레여, 네가 우는 바로 그놈이니라.

862. 또 한 놈: 프란체스코 데 카발칸티. 피렌체인으로 아르노 골짜기의 한 마을인 가빌레 사람에게 살해당하니, 이를 복수하고자 그의 친척들이 많은 가빌레 사람들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