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곡

제26곡

단테는 고국 피렌체의 참상을 개탄한다. 이곳을 떠나 제8낭에 이르러 모략가들이 불꽃에 싸여 골짜기를 걸어가는 것을 본다. 단테는 그중에서 트로이 전쟁의 용장 오디세우스를 본다. 그는 비참한 항해의 최후를 이야기한다. 호메로스도 베르길리우스도 오디세우스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영웅과 이타카까지만 동행하고 그다음엔 그를 그의 가족들 가운데에 버려둔다. 그러므로 오디세우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오직 단테의 독창이다.

1

기뻐하라, 피렌체여, 너 장하기도 하여라.

바다며 뭍이며 지옥에까지

네 이름은 나래를 퍼덕이며 떨치는구나.863

863. 1~3 피렌체의 오명이 마침내는 지옥에까지 미쳤음을 비웃는 반어적 표현.

4

도적들 가운데 그 따위 다섯 놈이864

시민이니 나는 차마 부끄러워……

넌들 그리 큰 자랑이라 우쭐거릴 게 없구나.

864. 다섯 놈이: 지옥편 25곡에 나타난 피렌체 귀족 출신들. 아뇰로 · 부오소 · 푸초 · 찬파 · 카발칸티의 5인.

7

그러나 새벽에 가까운 꿈865이 참되다면

다름 아닌 프라토866가 네게 갈망하는 바를

오래지 않아 이제 너는 깨달으리라.

865. 새벽에 가까운 꿈: 오비디우스 · 호라티우스 등의 저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옛 사람들은 새벽녘에 꾸는 꿈은 참된 꿈이라고 믿었다(지옥편 30곡의 우골리노 백작의 꿈, 혹은 연옥편 9곡의 단테 자신의 꿈 참고).

866. 프라토: 피스토이아와 피렌체 사이의 마을. 다른 주석에 의하면 추기경 니콜로 다 프라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1034년 베네딕토 9세 교황의 뜻을 받아 당쟁을 조정하러 피렌체에 부임했으나 헛되이 애만 썼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과 교회의 저주를 시민들에게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 때문에 화재와 다리의 파괴 등이 발생하고 1800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10

설령 벌써 그리됐다 하더라도 이른 것은 아니리니

꼭 있어야 할 일이거든 차라리 그러래라.

내 늙어갈수록 그것은 내게 더욱 짐스러울 뿐867이어니 ―

867. 더욱 짐스러울 뿐: 늘그막에 고향의 재앙을 보는 것은 더욱 마음 아픈 일이다.

13

여기서 우리는 떠났는데 길잡이는 앞서868

우리가 내려왔던 돌사다리로 올라

나를 끌어올리시니라.

868. 앞서: 지옥편 24곡 79~80행 참고.

16

돌다리의 바위와 험한 바위 사이로

외딴길을 따라 가노랄 제

손이 아니고 발만으로는 어림없는 일일레라.

19

그때 나는 슬퍼졌고869 내가 보고 온 것에

정신이 쏠릴 제 더욱 거듭 슬펐나니,

전에 없이 재주를 붙들어 매었기는870

869. 슬퍼졌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세상에서 그 재능을 악용하여 이같이 제8낭에서 벌받는 것을 보고.

870. 전에 없이 재주를 붙들어 매었기는: 재능을 남용하지 않으려 단테 자신도 조심한다는 뜻이다.

22

혹여 덕의 가르침이 싫어 어긋날까 함이요,

이리하여 운 좋은 별871 더 좋은 무엇이872 내게 좋은

873을 이바지하면 내 스스로 시기 않고자 함이로다.

871. 별: 행운을 의미한다(지옥편 15곡 56행 참고).

872. 더 좋은 무엇이: 신의 은총.

873. 23~24 좋은 일: 천재. 단테는 지력이 악용된 결과를 보고 자성한다.

25

온 누리를 비추는 것874이 제 얼굴을

우리 앞에 덜 가리게 되는 철875에,

고개 위에 한 농부 있어

874. 온 누리를 비추는 것: 태양.

875. 25~26 제 얼굴을 우리 앞에 덜 가리게 되는 철: 즉 밤이 짧은 철이니 여름을 가리킨다.

28

파리가 모기에게 밀려날 무렵876이면 정녕

몸소 포도를 따고 밭을 일구던 거기 ―

골짜기 아래에 반딧불이 떼를 보는 것같이

876. 파리가 모기에게 밀려날 무렵: 저녁녘.

31

그렇듯 많은 불똥들이 여덟째 구렁

어디나 없이 빛났으니, 이는 내가 그 바닥이

보이는 거기에 다다라서 곧 알아들은 바이라.

34

그리고 마치 곰 떼로써 복수한 그이877

말 떼가 하늘로 곧장 치오를 때

엘리야의 수레878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877. 곰 떼로써 복수한 그이: 예언자 엘리사. 어린이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놀리자 그는 숲에서 곰 두 마리를 불러내어 그들 중 42명을 찢어 죽이게 하였다(2열왕 2,23–24 참고).

878. 엘리야의 수레: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가 보이지 않자, 자기 옷을 움켜쥐고 두 조각으로 찢었다.”(2열왕 2,11–12).

37

눈으로도 그것을 따를 길 없이

한 가닥 구름처럼 높이 오르는 오직

연기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듯이

40

이같이 불꽃도 모두 수렁의 목구멍879을 거쳐

하나도 그 도적질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러나

어느 불꽃이고 한 도적놈씩 훔치더니라.880

879. 목구멍: 좁은 밑바닥.

880. 어느 불꽃이고……: 불꽃은 죄인을 덮어 밖으로 나타나지 않게 한다. 이 벌은 “혀도 불입니다. 또 불의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혀가 우리의 지체 가운데에 들어앉아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행로를 불태우며, 그 자체도 지옥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야고 3,6)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43

나는 보고 싶어 다리 위에 우뚝 서 있었는데

한 바위를 움켜쥐지 않았던들

가뭇없이 아래로 나둥그러질 뻔했노라.

46

길잡이는 내가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음을

보고 이르시되, “도가니 속엔 넋들이 있다.

누구도 스스로를 태우는 것에 감기어 있다.”

49

내 대답하되, “나의 스승이여, 그대 말씀에

나는 한결 든든하옵니다만 이럴 줄을

지레 알고 그대에게 아뢰고 싶었나이다.

52

에테오클레스가 그 형제와881 함께 얹혀진

섶에서 오르던 것처럼 위가 갈라진

불꽃 속으로 오는 자가 누구인지요?”

881. 에테오클레스가 그 형제와: 에테오클레스는 테베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그의 쌍둥이 폴리네이케스와 대결했는데 한 칼에 둘 다 쓰러졌다. 사람들이 그 시체를 모아 함께 태웠으나 불꽃은 생전의 원한을 나타내는 듯 둘로 갈라져서 올라갔다고 한다.

55

그가 내게 대답하되, “저 속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882가 벌을 받나니, 이렇듯 저들은

함께 분노했듯이 함께 벌 속으로 뛰어들었느니라.

882. 55~56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둘 모두 호메로스의 2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트로이인에 대해 함께 분노했던 것과 같이 지금 신의 벌도 함께 받는다.

58

그 위에 저들은 저 불꽃 속에서

로마의 지체 높은 조상883이 나갔던

문을 만들어 준 목마의 복병884을 탄식한단다.

883. 로마의 지체 높은 조상: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함락 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인의 조상이 된다(«아이네이스» 2,20-21 참고).

884. 문을 만들어 준 목마의 복병: 트로이 전쟁이 길어지자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큰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복병을 숨겨 놓았다. 그러고는 목마를 미네르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 말한 뒤 그리스 군과 함께 해상으로 퇴각했다. 그리스 군의 퇴각을 믿은 트로이인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왔다. 그러나 밤이 되자 복병이 일제히 목마 속에서 뛰어나와 성문을 열고 그리스 군을 맞아들였고 이로써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목마로 인해 그가 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므로 목마를 ‘문’이라고 표현했다.

61

그 속에 저들은 아직도 아킬레우스를 울리는

데이다메이아885를 죽게 한 꾀를 통곡하며

거기 팔라디움886의 벌을 받는 것이로다.”

885. 데이다메이아: 스키로스 섬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자기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여장(女裝)을 시켜 리코메데스 왕에게 위탁했다(데이다메이아는 이미 아킬레우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상인으로 분장하여 디오메데스와 함께 스키로스 섬에 와서 아킬레우스를 찾아 내고 그의 마음을 움직여 트로이로 출전하게 하였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낳은 데이다메이아는 이별의 슬픔으로 자살했다.

886. 팔라디움: 트로이 성 안에 있는 팔라데(미네르바)의 상. 당시에 사람들은 이 상이 섬 안에 있는 한 트로이도 안전하다고 믿었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걸인으로 변장하여 이 상을 훔쳐 냈다.

64

내 이르되, “저 불꽃 속에서도 저들이

말할 수 있다면 스승이여, 거듭거듭

천 번이고 거듭 당신께 구하노니

67

뿔 돋친 불꽃이 여기에 닿기까지 부디

저를 기다려 물리치지 마소서. 이 소원

때문에 저리로 기우뚱 선 나를 보소서.”

70

그는 내게 “너의 소원은 가장 기림을

받음직하도다. 이에 내 그를 들어 주려니

너는 모름지기 네 혀를 거두어라.

73

너 원하는 바를 내 알았으니 말일랑

내게 맡겨 두라. 저들이 그리스인들이었던

까닭에 아마도 네 말을 꺼리리라.”887

887. 네 말을 꺼리리라: 이탈리아인인 단테가 그리스에 관해서는 간접으로 얻은 지식밖에 없으니 충분히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말인지, 또는 원래 문화인으로 자처하는 그리스인이 교만하여 다른 나라의 사람을 야만시하고 경시한다는 뜻인지, 또는 고대 영웅은 현대 세계의 속인과 서로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는 뜻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76

어느덧 불꽃이 닿아 내 길잡이에게

때와 자리가 되었다 싶은 그때에

나는 그가 다음같이 말하심을 들었노라.

79

“너희 한 불 속에 둘이 된 자들이여,

내가 살던 때 내 너희에게 도움이 되었고

세상에 드높은 시를 써 두었을 제

82

그렁저렁 그것이 너희에게 쓰임이 되었다면888

너희는 꼼짝 말고 오직 너희 중 하나가

어디서 헤매다가889 죽었는지 일러 다오.”

888. 너희에게 쓰임이 되었다: «아이네이스»에 적혀 있어 그 이름이 영원히 남아 있음을 말한다.

889. 어디서 헤매다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 오디세우스는 오랫동안 표랑하다가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 아버지와 처자를 기쁘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부하를 거느리고 미지의 해상으로 나아가 난파당하여 죽었다는 이설이 중세에 전해졌다. 단테는 여기에 플리니우스 이후의 전설을 따랐거나, 또는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85

오래된 불꽃의 엄청난 뿔890

흡사 바람에 시달리는 불꽃인 양

투덜거리며 펄럭거리기 시작하더라.

890. 엄청난 뿔: 오디세우스가 디오메데스에 비해서 위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88

이리하여 말하는 혀가 그런 것같이

이리로 저리로 끄트머리를 내저으면서

소리를 내지르며 이야기하더라.

91

“아이네이아스가 그를 가에타891라 이름 짓기 전에

거기 가까이 일년 남짓 나를 감춰 주던

키르케892를 내가 떠나오던 그때에

891. 가에타: 남부 이탈리아의 한 장소. 아이네이아스가 이곳에 상륙했을 때 죽은 그의 유모 가에타를 이곳에 매장했기에 그 지방을 가에타라 이름 지었다(«아이네이스» 7,1–4 참고).

892. 키르케: 헬리오스의 딸로 요녀. 오디세우스의 일행을 돼지로 변신시켰다(«오디세우스» 10 참고).

94

자식893의 사랑도, 늙은 어버이894께 대한 효성도,

그리고 페넬로페895를 반드시 기쁘게

해 주었을 떳떳한 애정896

893. 자식: 텔레마쿠스.

894. 어버이: 라에르테스.

895. 페넬로페: 오디세우스의 아내. 오랫동안 오디세우스를 한결같이 기다려 정절의 귀감이 되었다.

896. 떳떳한 애정: 여기서는 부부애.

97

세상과 인간의 악과 그 값어치를

몸소 겪어 보고자 내 속에 품었던

정열을 이겨 내지 못하였나니라.

100

오히려 나는 깊고 넓은 바다897로, 나를

버리지 않았던 몇몇 벗들과 함께

외로이 배에 실려 맡겼더니라.

897. 바다: 지중해.

103

멀리 에스파냐와 모로코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쪽저쪽의 언덕이며 사르디냐의 섬이며

골고루 이 바다가 씻어 주는 섬들898을 보았노라.

898. 섬들: 코르시카 · 시칠리아 등의 섬들.

106

그 누구도 넘어 날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제 표지를 꽂아 놓은

저 좁은 목899으로 왔을 때에는

899. 저 좁은 목: 지브롤터 해협. 게리온의 가축을 빼앗으려고 헤라클레스가 에스파냐로 건너갔을 때, 땅이 끝나는 서쪽 끝에 이 해협을 좁히는 두 산 카르베(에스파냐)와 아빌라(아프리카)를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109

나와 길벗들은 늙고 흐려졌었노라.

바른쪽으로 나는 세비야900를 떠났고

왼쪽으론 이미 세우타901를 떠났더니라.

900. 세비야: 에스파냐 서남부의 한 지방.

901. 세우타: 지브롤터 해협에 닿아 있는 아프리카의 작은 도시.

112

나는 말하였더니라. ‘오, 너희 천만 위험을

거쳐 서녘에 다다른 겨레들이여,

너희 감각에 이렇게라도 강인하게

115

아직 남아 있는 목숨에 즈음하여

태양을 사뭇 따라서 사람 없는

세계902를 찾으려는 그 생각을 버리지 마라.

902. 116~117 사람 없는 세계: 남반구. 당시 사람들은 남반구는 전체가 물에 덮여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생각했다.

118

너희는 모름지기 너희의 타고남을 생각할지니

짐승처럼 살고자 태어났음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좇기 위함이었나니라.’

121

이 짧디 짧은 타이름에 나의 길벗들은

어찌나 갈 길을 서두르는지 나중엔

도저히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었나니,

124

우리는 뱃머리를 아침으로 돌려903

미치게 퍼덕이는 날개인 양 노를 저어

항상 왼쪽으로만 지향하니라.

903. 아침으로 돌려: 동쪽 방향으로. 지브롤터 해협에서 항로를 서남쪽(지구에서 보면 동남)으로 잡고 계속 가면 예루살렘의 정반대 지점인 정죄산(淨罪山)에 닿는다.

127

이미 밤이 되어 다른 지극地極904 뭇 별들이

보였는데 우리의 반구905는 자꾸 낮아져

바다 밑에서 솟지를 못하더라.

904. 다른 지극: 남극.

905.우리의 반구: 북극.

130

깊은 고장으로 우리가 들어간 다음

달 아래 빛이 다섯 번906 켜졌다가

또 다섯 번 꺼졌을 무렵에

906. 달 아래 빛이 다섯 번: 5개월 만에.

133

거리 탓인지 희미하게 산 하나907

나타났는데 그것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높다란 산이더라.

907. 산 하나: 연옥의 정죄산. 성도 예루살렘의 반대쪽에 있다.

136

우리는 기뻤어도 그것은 이내 통곡으로

변하였나니, 새로운 땅에서는 새로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뱃머리를 냅다 들이친 까닭이었도다.

139

세 번이나 온통 물벼락을 맞고 나서

네 번째엔 천의天意908 뱃머리를

치켜 올렸다가 고물을 푹 빠지게 하여

908. 천의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께서는 산 사람이 정죄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연옥편 1곡 130~132행 참고).

139

마침내 바다는 우리 위를 덮치고 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