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곡
단테는 제9낭에서 종교와 정치 때문에 분쟁을 일삼던 자들이 벌받는 것을 본다. 그들은 모두 지체가 찢기고 잘라졌는데 그중 몸뚱이 한가운데가 찢어진 마호메트를 보고 그와 이야기한다.
1방금 내가 목도한 피와 상처를 들어
아무리 푸는 말950로 되풀이하기로서니
뉘 있어 오롯이 이야기할 수 있을런고.
실로 어느 말이라도 넉넉지 못하리니
우리 말이나 정신은 이렇듯 엄청난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그릇이 작은 탓이어라.
7일찍이 팔자 사나운 풀리아951 땅 위에서
트로이인952을 위하여, 그리고
그르치지 않는 리비우스953가 쓴 것과 같이
952. 트로이인: 트로이 함락 후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이탈리아로 넘어온 사람들. 옛날 로마의 동남쪽에 살았던 산니타인과 로마인은 여러 번 싸웠는데 결국 로마인이 승리했다. 다른 판본에는 로마인이라 되어 있으나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인이란 뜻이다.
953. 리비우스: 로마의 역사가(전 59년~후 17년).
숱한 가락지를 노획한 저 지루한
싸움954을 위하여 흘린 피를 서러워하는
백성을 한데 모은다 하자.
게다가 루베르토 구이스카르도955와 맞섰기에
뼈아픈 타격을 맛본 사람들이며, 그리고
아직도 그 해골들이 체페란956
956. 체페란: 교황령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 있던 전략상 중요한 지점. 1266년 카를로 단지오(앙주의 샤를)가 나폴리 왕국을 공격했을 때 풀리아의 귀족들은 만프레디 왕을 배반하고 이 지역을 적에게 내어 주어 이것이 베네벤토 전쟁이 되었다. 이 전쟁으로 만프레디는 전사하고 전사자는 8천 명이 넘었다.
풀리아인들이 모두 배신한 거기와 탈리아코초957의
저쪽 곧 늙은 알라르도958가 무기 없이 쳐 이긴
그 자리에 쌓여 있는 백성을 다 합친다 하자.
958. 알라르도: 알라르도 디 발레리. 프랑스 군의 노장으로 카를로 1세의 참모였다. 만프레디의 사후 그가 카를로 1세에게 올린 책략으로 코라디노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더러는 찔리고 더러는 동강난
지체를 벌려 놓는다 할지라도 그 무엇도
징그러운 아홉째 구렁엔 못 비기리라.
22나는 턱으로부터 방귀뀌는 자리까지 찢어진
한 놈을 보았는데 설령 허리나 밑바닥이
헐어진 통이라도 이렇듯 창이 나진 못할레라.
25종아리 사이로 창자가 축 늘어졌는데
오장과 아울러 삼켜진 것을 똥으로
빚어 내는 처량한 주머니도 엿보이더라
28못 박힌 듯 그를 보느라 내가 골똘할 적에
그는 나를 보고 두 손으로 가슴을 헤치며
말하더라 “자아, 찢어진 내 꼴을 보려무나.
31마호메트959의 잘라진 꼴을 보려무나.
내 앞엔 턱부터 이마 털까지 낯이
깨어진 알리960가 통곡하며 걸어간다.
960. 알리: 마호메트의 사촌이며, 그의 사위. 이슬람교 최초로 분파를 만든 자.
그리고 너 여기서 보는 뭇 놈들은 생전에
무지와 분열을 씨 뿌리던 놈들이니
그 때문에 이렇게 토막난 것이란다.
37여기 바로 뒤에 한 마귀가 있어
우리가 예수의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 무리의 하나하나를 또다시
40칼날로 이렇듯 혹독히 다스리나니,
그놈 앞을 되짚어 가기 전에
상처가 아물어 버린 까닭이니라.
43아무튼 돌다리 위에서 굽어보는 너는
누구냐? 아마도 네 고백961 탓으로 심판을 받게 된
저 벌을 받으러 가기가 망설여지는 게로다.”
내 스승이 대꾸하되, “죽음이 저에게 닿은 것도
아니요, 괴로워야 할 죄업이 데려온 것도
아니다. 다만 저에게 알뜰한 체험을 주고자
49이미 죽은 내가 저를 이끌고 지옥의
둘레에서 둘레로 이리 내려온 것이어니
내 네게 말함같이 이는 참말이니라.”
52이를 듣자 백도 넘을 놈들이
깜짝 놀라 아픈 것도 잊고서 나를
보고자 구렁 속에 움쭉 않고 섰더라.
55“그럼 이제 곧 정녕코 태양을 볼
그대여, 돌친 수사962에게 일러 다오. 그가
당장 내 뒤를 쫓아올 마음이 없거든
달리는 얻기 어려운 승리를
눈 더미로 인해 노바라인963에게 건네주지 않게
양식으로 몸을 든든히 하라고.”
걸어가려고 한쪽 발을 쳐든 다음
마호메트가 이 말을 내게 하고는
바야흐로 떠나고자 땅에 이것을 디디더라.
64목구멍이 뚫리고 코는 눈썹 밑까지
바짝 끊기었을뿐더러 귀도
왼쪽 귀밖에 없는 다른 한 놈964이
딴 여러 놈과 함께 놀란 눈초리로
지켜 섰더니 거죽이 온통 시뻘건
목구멍을 열어 딴 놈들에 앞서
70이르되, “오, 죄업이 벌주지 못한 그대,
몹시 비슷한 얼굴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면
일찍이 저 위 라틴 땅에서 내가 본 그대여,
73그대 돌아가 베르첼리965로부터 마르카보966로 굽이치는
아리따운 평원967을 보시거든
메디치나의 피에르968를 잊지 마시라.
966. 마르카보: 포 강 하구에 있는 요새.
967. 아리따운 평원: 롬바르디아 평원.
968. 메디치나의 피에르: 피에르는 로마냐의 각 시를 돌아다니며 영주들을 이간질한 자이다. 일찍이 단테가 그 집에 손님으로 가서 그를 본 일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본 그대여’(72행)라 말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파노969의 착한 두 사람―
구이도와 안졸렐로970에게 알리시라.
우리의 내다봄이 헛되지 않다면
970. 구이도와 안졸렐로: 둘 다 파노의 귀족이다. 1312년 리미니의 영주인 말라테스티노(지옥편 27곡 46행 주 참고)의 부탁으로 카톨리카에서 회담을 위해 가던 도중 그의 간계에 속아 넘어가 두 사람 다 익사했다.
한 사람 흉악한 폭군971의 배신 때문에
저들은 저들의 배에서 내던져져
라 카톨리카972 근방에서 잠겨 버리리라고.
972. 라 카톨리카: 리미니와 파노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변의 작은 마을.
넵투스인들, 그 옛날 키프로스와 마요르카973의
섬 사이에서 해적이나 아르고스 종낙974에게서도
이렇듯 어마어마한 죄악이란 보지 못했으리라.
974. 아르고스 종낙: 그리스인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그리스인을 지중해를 항해하는 해적인 줄로 여겼었다고 한다(«아이네이스» 2,78).
여기 나와 같이 있는 자975에게는 차라리
아니 봄만 같지 못한 그 땅976을
다스리고 있는 저 보름보기977 배신자는
976. 땅: 리미니. 이 땅을 다스리던 ‘저 배신자’는 말라테스티노.
977. 보름보기: 애꾸눈이. 말라테스티노는 날 때부터 애꾸눈이었다.
저와 함께 일을 꾀하려 저들을 오게
하리니, 그때엔 포카라978의 바람 앞에도
저들은 맹세하거나 빌 까닭도 없으리라.”
나는 그에게 “너 짐짓 네 사연을 내가
윗 세상에 전하기 원한다면, 보는 게979
마음 아프다던 그가 누군지 밝혀 보아라.”
그러자 그는 제 동무의 턱에다 손을
대더니 그 입을 벌리게 하고는 부르짖더라.
“그게 바로 이놈980인데 말을 못하는구나.
쫓겨난 그놈은 카이사르에게 굳이 우기어
방비된 상태로 주저하면 번번이 해를 입는다 하며
그 망설이는 마음을 멈추게 했느니라.”
100오오, 이렇듯 대담스럽게 말하던 쿠리오가
목구멍엔 혀가 끊긴 채 내게는
얼마나 무서워 떠는 자같이 보였던고.
103이 손 저 손이 다 잘린 다른 한 놈은
몽땅한 두 팔을 흐린 공중에 치올리고
그러기 피에 버무려져서 소리치더라.
106“너는 또 저 모스카981가 생각나리라―에그
‘된 일은 그만이다.’라고 한 그놈이―.
이 한마디는 토스카나인의 짓궂은 씨982였다”
982. 토스카나인의 짓궂은 씨: 양당의 분쟁은 토스카나 주 각지로 확대되었다.
나는 “그리고 네 겨레의 죽음983도.”라고 덧붙여
말하였더니, 아픔에 아픔만 더욱 쌓이어
그는 서럽고 미친 사람처럼 가버리더라.
나는 한 족속을 보느라 머무를 뿐이다가
또 무엇을 보았는데, 따로 내세울 증거도
없이 양심이 나를 두둔해 주지 않았던들
115나는 그것과 말 거는 것조차 무서울 뻔했노라.
좋은 벗이야말로 양심인지고! 스스로 맑음을
느끼는 갑옷 밑에 아무도 두려울 게 없는 것―
118진정 나는 머리 없는 흉상이 슬픈 족속 중의
딴 놈들처럼 걸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도 눈앞에 보는 것만 같구나.
121놈은 끊어진 대가리의 머리채를 쥐고
초롱인 양 손에 쳐들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쳐다보며 말하더라. “흐흐으.”
124스스로 제 자신에게 등불이 된 그것은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데, 어이
그럴 수 있는지는 이를 마련한 이가 아시리라.
127바위 다리의 바로 발치에 왔을 즈음 그놈은
제 말소리를 우리한테 바싹 들이대고자
온통 벤 목과 함께 팔을 높이 쳐들더라.
130다음 그의 말이 “자, 성가신 벌을 보려무나.
너 숨쉬며 죽은 자들을 보고 가는 자여,
이렇듯 끔찍스러운 것을 어디서 또 보았는가.
133그대 내 기별을 전할 사람이어니 그대는 알라.
나는 바로 보르니오의 베르트람,984 젊으신
나라님985에게 몹쓸 간언을 드린 자로다.
985. 134~135 젊으신 나라님: 헨리 2세의 장자 헨리. 부왕 재위 중 이미 대관식을 올렸으므로 부왕과 구별해 ‘젊은 왕’이라 불렸다. 다른 판본에는 존 왕이라 되어 있으니 그는 헨리 2세의 막내아들로서 1199~1216년까지 영국 왕이었다.
부자父子를 서로 등지게 한 자가 바로 나이니
간특한 교사로 압살롬이 다윗을
모반케 한 아히토펠986도 이에서 더할 수 없으리라.
이렇듯 화합된 사람들을
갈라놓은 탓으로, 이 몸뚱이에 있는 근본987에서
떨어진 머리를, 아아, 나는 지니노니,
이같이 응보는 내 안에 드러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