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곡

제30곡

단테는 제10낭의 언덕을 걸어가면서 속임수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을 본다. 그 속에는 변장하고 불륜의 정욕을 채운 미라와 위조자, 말로써 남을 속인 자들이 몸이 붓는 병과 갈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1

헤라가 가끔가끔 화를 내는 버릇처럼

세멜레 때문에 그가 테베의 혈족에게

노발대발 화를 내었을 무렵1010

1010. 1~3 헤라는 남편 제우스 신이 테베 왕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 분풀이를 테베의 백성들에게 한 일이 있다.

4

아타마스1011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

양쪽 팔에 두 아들1012을 안고 가는

아내1013를 보자 소리쳤나니라.

1011. 아타마스: 카드모스의 딸로 세멜레와 자매인 이노의 남편. 테베의 왕이 되어 이노와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노가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 난 아들 디오니소스를 양육하자 헤라가 분노하여 이노와 함께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1012. 두 아들: 레아르코스와 멜리케르테스.

1013. 아내: 이노.

7

“그물을 치자꾸나, 이리하여 암사자와

그 새끼 사자들을 길목에서 잡자꾸나.”

그러고는 앙칼진 이빨을 쑥 내밀어

10

레아코스라 이름하는 한 놈을 움켜잡더니

휘휘 내두르다가 바위에다 패대기치매

그 계집1014은 딴 짐1015과 함께 잠겨 버렸더니라.

1014. 계집: 이노.

1015. 딴 짐: 멜리케르테스.

13

그리고 무엇이든 덤벼드는 트로이인의 교만을

운명이 송두리째 거꾸러뜨려

임금1016이 그 나라와 더불어 망해 버렸을 때

1016. 임금: 프리아모스.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왕으로 파리스의 아버지다. 패전 후 살해당했다.
16

슬프고 가엾은, 사로잡힌 헤카베1017

폴릭세네1018가 죽은 것을 보고, 게다가

그의 아들 폴리도로스1019를 바닷가에서

1017. 헤카베: 프리아모스의 아내. 트로이 성 함락 후 그의 딸 폴릭세네와 함께 오디세우스의 종으로 잡혀갔다.

1018. 폴릭세네: 프리아모스의 딸. 그리스 군의 용장 아킬레우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그의 무덤에 바쳐졌다.

1019. 그의 아들 폴리도로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막내아들. 부왕 프리아모스는 그를 피신시키려고 보물과 함께 트라키아 왕에게 보냈으나 그 왕은 그를 죽이고 보물도 다 빼앗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 헤카베가 폴릭세네의 시체를 씻으러 해변에 갔을 때 폴리도로스의 시신이 이곳에 표착한 것을 보았다(지옥편 13곡 47행 주 참고).

19

찾아 내고는 미치도록 슬퍼져서

개같이 짖었나니, 드디어 그 아픔은

그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제아무리 테베나 트로이인의 광포일지라도

이짐승이나 더욱이 사람의 몸뚱이를

후려갈겨 더없이 모질게 굴었어도

25

내 본 바 해쓱하고 헐벗은 두 영혼이

우리에서 풀려나온 돼지들인 양

물고 뜯으며 내닫던 그때 같지는 못하더라.

28

한 놈1020이 카포키오에게 달라붙더니 목덜미를

이빨로 잡아채서 질질 끄는 바람에

배때기가 여문 바닥에 쓸려 생채기가 나더라.

1020. 한 놈: 잔니 스키키.
31

벌벌 떨며 남아 있는 아레초 놈1021이 내게

이르되,“저 날도깨비는 잔니 스키키1022란 놈인데

이렇듯 미쳐 날뛰며 남을 괴롭힌단다.”

1021. 아레초 놈: 그리폴리노(지옥편 29곡 109행 주 참고).

1022. 잔니 스키키: 피렌체의 카발칸티 가문에 속한 자. 부오소 도나티의 아들(또는 조카)인 시모네 도나티는 자기 아버지가 죽은 뒤 잔니를 아버지처럼 변장시켜 자리에 눕히고 공증인을 속여서 자기에게 유리한 유언장(토스카나에서 으뜸가는 노새를 얻을 권리까지 포함된)을 만들었다.

34

나는 그에게 “아, 어깨 너머로 어느 놈이

너를 이빨로 물어뜯을까 저어하노니 저기

떨어져 있는 놈이 누군지 제발 말하여 다오.”

37

그는 내게 “그건 바른 사랑에서 벗어나

제 아비의 연인 노릇을 하던

죄스러운 미라1023의 오래된 넋이니라.

1023. 미라: 키프로스 섬의 왕 키나라스의 딸.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여 어둠을 틈타 제 아비에 대한 불륜을 수행했다.
40

그년이 아주 남인 체 모양을 거짓 꾸며

그놈하고 이렇도록 죄를 짓게 된 것은,

마치 저기 저 녀석이 마소 중에도

43

으뜸가는 암컷1024을 제 것 삼고자 스스로

부오소 도나티인 체 유서를 쓰며

유언을 진짜같이 만든 것과 같도다.”

1024. 으뜸가는 암컷: 부오소 도나티가 소유했던 암컷 노새로 앞에서 말한 위조된 유언장에 포함되었다. 당시 토스카나 주의 제1의 명마라 불렸다.
46

나의 눈이 사로잡혀 있던 바 그 미쳐

날뛰는 두 놈이 지나간 다음 나는

또 다른 슬픈 족속을 보러 눈을 옮기니라.

49

사람의 가랑이가 돋힌 거기서부터

몽땅 다리가 끊기어 흡사 비파

모양으로 생긴 것을 나는 보았노니,

52

심한 수종水腫이 잔뜩 빨아들인

물기로 인해 사지가 고르지 못했으니,

그의 얼굴은 배에 너무도 안 어울렸고

55

그로 하여금 입술을 벌린 채로 버려두어

마치 열병 환자가 갈증을 못 이겨 입술

하나는 턱으로 또 하나는 위로 쳐드는 것 같더라.

58

그는 우리에게 이르더라. “오, 이 짓궂은 세계에

무슨 수로 벌 없이 지나가는 그대들인지

내 모르거니와 그대들은 보고 잊지 마라.

61

마에스트로 아다모1025의 가엾은 꼴을……

살아선 무엇이든 마음껏 실컷 가지더니

이제 나는 흥…… 한 방울 물1026에 허덕이누나.

1025. 마에스트로 아다모: 브레시아인. 로메나의 구이도 백작에게 초대되어 화폐 주조의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위조해서 사욕을 채웠다. 후에 이 사실이 드러나 1281년 피렌체에서 화형당했다.

1026. 한 방울 물: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6,24)

64

카센티노1027의 파아란 봉우리에서

그 시원하고 잔잔한 개천을 이루며 아르노로

흘러내리는 시내와 시냇물들이

1027. 카센티노: 아펜니노 산맥에 있으며 아르노 강의 수원을 이루는 계곡. 자기가 죄를 저질렀던 물 맑고 공기 좋은 카센티노 부근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고통과 비탄이 더욱 커진다.

67

항시 내 앞에 있음이 까닭 없음이 아니니,

그림자마저 나를 목 태우게 함이야말로

내 얼굴 살을 저며 낸 그 병보다 훨씬 더하니라.

70

나를 매질하는 사정없는 정의가

더욱 나의 한숨이 숨 가빠지도록

내가 죄지은 그 자리에서 트집을 잡는구나.

73

거기가 로메나1028 ― 내 ‘세례자’를 찍어서1029

가짜로 돈을 만들어 내던 자리 ― 그 탓에

나는 타 버린1030 몸을 윗 세상에 남겼노라.

1028. 로메나: 카센티노의 성으로 구이도 백작 집안의 소유.

1029. ‘세례자’를 찍어서: 피렌체의 화폐는 한 면에는 이 도시의 수호자인 요한 세례자의 상이, 다른 면에는 이 시의 인장인 백합이 찍혀 있었다.

1030. 타 버린: 61행 주 참고.

76

그러나 내 만일 여기서 구이도나 알레산드로나

그들 형제1031의 가엾은 영혼을 본다면

브란다의 샘물1032인들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1031. 그들 형제: 아지놀포. 로메나의 백작. 이 형제들은 아다모를 꾀어 화폐를 위조하게 했다.

1032. 브란다의 샘물: 시에나의 유명한 샘. 로메나에도 같은 이름의 샘이 있다고 한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는 그들 형제들이 이곳에서 벌받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내 몸의 참을 수 없는 갈증쯤 아무것도 아니고, 갈증을 낫게 할 샘물도 부럽지 않다는 말이다.

79

미쳐서 빙빙 싸대는 넋들의 말이

옳다면 그 하나는1033 이미 이 자리에 있도다.

허나 묶여진 사지1034를 가지고 내 무엇을 하랴.

1033. 그 하나는: 아지놀포. 그는 1300년 초에 이미 죽었다. 또는 구이도라고도 한다.

1034. 묶여진 사지: 몸이 병으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82

백 년에 한 치씩만이라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 훨씬 가벼워지기만 한다면

설사 둘레가 11마일1035이요

1035. 11마일: 제10낭의 둘레는 제9낭의 둘레의 반이다(지옥편 29곡 9행 참고).

85

반 마일이 되는 너비일망정

나는 진작 길을 나서서 이 괴로운 족속

가운데로 그를 찾아다녔으리라.

88

놈들 탓으로 내가 이 따위 무리 틈에 끼어

있나니, 저들이 나를 꾀어서 쇠 찌꺼기

세 캐럿1036되는 피오리노1037를 녹여 짓게 했느니라.”

1036. 캐럿: 피렌체 금화의 금은 24캐럿인데 아다모는 금 21캐럿에 혼합물 3캐럿을 섞어서 위조 화폐를 주조했다.

1037. 피오리노: 피렌체의 금화. 한 면에 ‘백합fiore’ 이 새겨 있어 이같이 불린다.

91

내 그에게 “너희 오른손 쪽에 아주

바싹 달라붙어 겨울날의 축축이 젖은 손처럼

연기를 피우는 그 기구한 두 놈은 누구뇨?”

94

대답하되, “내가 이 벼랑으로 빗발같이

내려왔을 때 여기에 저들을 보았는데 그런 뒤

저들은 꼼짝 않고 아마도 영원히 못 움직이니라.

97

한 년은 요셉을 모함하던 거짓말쟁이,1038

한 놈은 트로이의 거짓말쟁이 그리스인 시논,1039

연놈은 호된 열병으로 가득한 냄새를 뿜고 있나니라.”

1038. 한 년은…… 거짓말쟁이: 이집트 왕 파라오의 신하인 포티파르의 아내. 야곱의 아들, 청년 요셉을 마음에 두어 그를 유혹했으나 거절당하자 도리가 그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웠다(창세 39,6 이하 참고).

1039. 거짓말쟁이 그리스인 시논: 트로이 전쟁 때 목마를 만들고 트로이인에게 거짓말을 해서 이것을 성안으로 들여보낸 자이다.

100

그러자 그중 한 놈이 이렇듯 험악하게

이름 대어진 것을 원통히 여겼음인지

굳어진 배때기를 주먹으로 패더라.

103

그것은 마치 북이나 진배없어 둥둥

울리는데, 이때 마에스트로 아다모가 이에

못지않게 뻣뻣한 팔로 그의 낯짝을 갈기며

106

그에게 말하더라. “몸뚱이야 무거워서

움쭉 못하는 나지만 이러한 짓을

하는 데 쓰고자 팔을 지닌 나로다.”

109

이내 저놈이 대꾸하되, “불로 들어갈 때는

네 팔이 이렇듯 날래지 못했어도1040 돈 만들

그때에는 이렇듯, 아니 한결 더 날랬었지.”

1040. 109~110 불로 들어갈 때는……: 화형에 처해질 때는 손이 결박되어서 이렇게 자유롭지 못했다.
112

이젠 수종 든 놈이 “너희 말이야 옳다마는

트로이에서 너 참말을 했어야 할 그때는

그다지 진실된 증언을 아니하였지.”1041

1041. 113~114 트로이에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목마의 일을 물었을 때는 지금처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15

시논이 이르되, “내가 말을 거짓했다면

너는 돈을 거짓 만든 놈, 또 나는 여기 한마디 헛말

때문에 있어도 너는 그 어떤 악의보다 더한 놈이로다.”

118

퉁퉁 부은 배를 가진 놈이 대답하되,

“헛맹세를 한 놈1042아, 그 망아지1043를 잊었느냐.

온 천하가 알고 있는 그 일을 아파하렷다.”

1042. 헛맹세를 한 놈: 말[어]과 목마의 일. 시논은 하늘에 걸고 자기 말의 진실됨을 맹세했다(«아이네이스» 2,152 이하 참고).

1043. 망아지: 목마.

121

그리스인이 하는 말이 “널랑 네 혓바닥을

쪼개 내는 갈증과, 눈앞까지 이렇게

울타리를 쳐 놓은 썩은 물이나 슬퍼해라”

124

이에 위조 금화 만든 놈이 “네놈 아가리는 늘

나쁜 욕을 퍼부으려고 요렇게

찢어졌구나. 내 목마르고 물에 퉁퉁 불었다만.

127

네놈은 불에 타서 대갈통이 들쑤시고

나르키소스의 거울1044을 핥게 하려고 여러 말로

너를 권유할 것도 없으리라.”

1044. 나르키소스의 거울: 샘물을 말한다. 나르키소스는 에코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 그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모하게 되어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죽은 뒤 수선화로 변했다고 한다.
130

저들의 말을 듣노라 우두커니 서 있을 제

스승이 내게 말하시더라. “옳다, 넌 홀렸구나.

자칫하면 내 너와 마음 상할까 싶구나.”

133

그가 성내어 이르시는 것임을 깨닫자 나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그를 향해 돌아섰나니,

내 지금도 그걸 생각만 하여도 몸이 빙빙 도는구나.

136

흉한 꿈을 꾸는 사람이, 오히려

꿈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리 된 것이

그리 안 되었으면 싶어지듯이

139

나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였나니,

사과하고 싶고 줄곧 사과는 하여도

아무래도 그리 했는가 싶지 않더라.1045

1045. 139~141 부끄러움에 당황해서 오히려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 표정이 사과의 뜻을 전달하게 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직도 말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42

스승이 이르시되, “보다 적은 부끄러움이

네가 저질렀던 것보다 큰 잘못을 씻나니

이젠 너 그 모든 슬픔에서 벗어날지라.

145

뭇 놈들이 되지 못한 말다툼을 하는 자리에

운명이 너를 데려올는지도 모르니

내 항상 네 곁에 있음을 잊지 말렷다.

148

그따위 것을 듣고 싶어함은 부질없는 마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