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필 동기

집필 동기

이제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처음으로 설교한 뒤 이 서간을 보낼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난 뒤에도 자기가 그곳에 설립한 공동체와 줄곧 접촉한다.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오지는 않지만, 5,9–13을 통해서, 바오로가 이 코린토 1서 전에 또 다른 편지를 써 보냈음을 알 수 있다(이 잃어버린 편지를 가끔 ‘경전 전[經典 前] 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편지에서 바오로가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그리스인들의 관계이다. 어떤 학자들은 2코린 6,14—7,1이 그 편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 편지는 코린토의 신자들이 어떤 질문을 담아서 보낸 짧은 서신에 대한 바오로의 답장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또한 사도행전의 이야기(사도 18,24–28) 덕분에, 코린토 공동체가 아폴로라는 훌륭한 그리스도교 설교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다인으로서 이미 새로운 신앙을 배워 알고 있던 아폴로는, 에페소에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또는, 프리스카)의 도움으로 완전히 그리스도께 돌아선 다음, 에페소 신자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코린토로 간다. 사도행전은 아폴로가 달변가인 데다가 성경에도 정통한 사람으로, 코린토에서 특히 유다인들과 논쟁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바오로는 말주변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2코린 10,10). 이러한 면에서 아폴로는 바오로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폴로를 내세우는 파벌 하나가 생겨나, 바오로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신자 집단과 경쟁 관계를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1,12). 아폴로는 틀림없이 이러한 파벌 형성을 좋지 않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는 코린토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는다. 바오로가 코린토 1서를 쓸 때에는 이미 에페소로 돌아가 바오로 곁에 있었다. 그리고 코린토로 돌아가라는 사도의 간곡한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6,12). 자기를 내세우는 파벌을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이른바 ‘아폴로파’에 바오로 편이라느니, 케파 편이라느니, 또 그리스도 편이라느니 하는 집단이 들고 일어난다(1,12). “바오로 편”은 바오로를 경모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졌는데, 바오로에 대한 애정이 분파적이고 파벌적인 성격을 띤 것 같다. “케파 편”은 베드로 사도를 내세우는 신자들이 코린토를 거쳐 지나간 뒤에 생겨났을 것이다(이 사도는 본디 아람 말로 케파라고 불렸는데, 이를 그리스 말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이다). 아니면 베드로 자신이 코린토에 갔었을 수도 있다. 사실 9,5에 따르면, 베드로가 코린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편”에 관해서는 아주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된 상태이다. 이들은 곧 예수님이 유다인의 메시아일 따름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테두리 안에 넣으려는 사람들이라거나, 또는 자기들은 그리스도의 영과 관련이 있을 뿐 어떠한 조직도, 어떠한 교회 공동체도 거부한다는 영적 영지주의자라는 것과 같은 해설이다. 그러나 이 이른바 그리스도 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는 말 자체가 이 서간의 펼경사가 본문 속에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러한 파벌을 꾸짖는 바오로 자신의 대답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분열에는 밀교적(密敎的)이고 철학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어떤 지혜 운동이 코린토 사람들에게 미치던 영향도 한몫을 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두 가지 주제를 통합하여 다룬다. 분열과 거짓 지혜, 그리고 그 거짓 지혜에 대립되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십자가의 지혜이다(1,10─3,4).

세 번째 선교 여행을 하던 중(사도 19) 에페소에 들른 바오로는 먼저 아폴로에게서, 이어서 클로에 집안 사람들에게서, 코린토 교회의 이 걱정스러운 상황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소식들도 전해 들을 것이다. 곧 자기 계모와 동거하는 근친상간자의 이야기(5,1–13), 신자들이 이교도들의 법정에 서로 고발하는 상황(6,1–11), 불륜이 자행되는 사태(6,12–20), 성찬례 거행과 전례 모임에서의 무질서(11,2–34),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잘못된 교리(15장)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코린토 신자들 자신이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바오로에게 서신을 보내어 개입해 달라고 요청한 바도 있다. 이는 혼인이나 독신 생활과 관련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7,1 참조).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는 문제나(8,1 참조) 성령의 특별한 은사 문제도(12,1 참조), 코린토 신자들의 질의에 대한 바오로의 답변일 수 있다. 그에 따라 바오로는 이 서간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이다. 사도는 공동체가 여러 가지 오류를 바로잡고 평화와 조화를 이루게 하며, 코린토 신자들이 그리스도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나날이 접하게 되는 제반 문제에 해답을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