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언자의 활동

예언자의 활동

계속해서 새로운 부분이 첨가되는 과정이 끝나지 않는 열린 책이었던 이사야서는 비유적으로 도서관, 어쩌면 예언서들의 도서관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집(選集)이라는 바로 이 사실은 예언자 이사야가 생애 중에 그리고 사후에 백성의 기억 속에 남아 수행한 그의 본질적인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 이 비범한 인물은 기원전 740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그의 활동은 적어도 40년 동안에 걸쳐 전개된다. 그가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한 때는, 아자르야라고 불리기도 한 우찌야 임금의(2열왕 15,1–7 참조) 오랜 치세 아래 유다가 누렸던 번영의 시대와 일치한다. 그러나 번영은 사치의 팽배, 모든 토지들을 독점하는 지주 계급의 출현,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 등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그래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에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죄하고, 그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야보다 몇 년 앞서 아모스 예언자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이사야가 정치 활동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아하즈 임금 치세 초기의 일이다(2열왕 16,1–20). 당시,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는 아람 왕국과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위협이 되는 아시리아의 세력에 대항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유다 왕국의 아하즈는 자진해서 아시리아 임금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하즈는 자신을 강제로 끌어들여 연합 전선을 이루려는 두 이웃 나라에 대항하여, 아시리아 임금에게 징벌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나지만 아하즈는 자기의 친아시리아 정책을 계속 유지한다. 기원전 734년을 전후하여 이 일이 일어난 뒤, 이사야는 자의든 타의든 십여 년 동안을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방에서도 실감하는 아시리아 세력의 점진적인 확장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기원전 716년 히즈키야 임금이 아하즈를 계승할 때(2열왕 18━20), 이사야는 다시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타난다. 그러나 새 임금은 주님께 충실하면서도, 국정 수행에서는 예언자의 조언을 조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사야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비록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지라도 유다가 이집트나 그 밖의 인근 민족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계속 반대한다. 어떠한 당위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연합 전선의 구축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기회주의에 대항하여 이사야는 주님에 대한 충실성을 요구한다. 그는 바로 이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관점에서, 주님에게 반항하고 그럼으로써 그분에게 일종의 적이 되어 그 교만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백성을 책벌하시려는 하느님의 진노의 막대가 바로 아시리아임을 점점 선명하게 보게 된다.

기원전 701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군대가 퇴각하게 되는데, 이는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예언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근본적인 의견 차이를 나타내기는 하였지만, 이 사건은 분명 이사야의 권위를 높여 주었다.

예언자 이사야를 왕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권위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언자로서 그의 사명에서 유래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조언을 청하기는 하였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그를 따랐다. 종교 지도자들 곧 사제와 예언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그에게 야유를 퍼붓기까지 하였다. 이사야가 순교하였다는 전통은 분명히 외경에 속한다(‘이사야의 승천’과 에녹서 11,37). 이사야서의 머리글에(1,1)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임금 시대에는 이미 살고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지만, 이사야 순교의 전설에는, 흔히 보는 통설처럼, 예언자의 삶이 인간적으로는 실패였다는 견해가 반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의 근본적인 자질들 곧 그의 권위와 고귀함,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 민족에 대한 열정은 그의 언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언 신탁들이 지니고 있던 일정한 전통적 규칙들에 부합하면서도, 그는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수사학 기술들을 자기 예언에 적용시킨다. 이따금 해학으로 가득한 언어유희, 동일한 자음 또는 모음을 되풀이하는 자음운과 모음운,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은유 등이 그것이다. 그를 교육했던 현인들에게서처럼 그에게도 현실은 의미가 가득한 것으로 드러난다. 자연의 요소들 곧 불, 땅, 물, 바람 등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세력이라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우리 주변의 현실처럼 피해 갈 수 없는 하느님의 양면성을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게 말한다. 그는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사야서에서 평범하고 장황하게 표현된 일정한 문장들을 예언자 자신의 말과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언어가 표현의 능력만이 아니라 창조력을 지니고 있다면,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증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사야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