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중요성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가 쓴 여러 서간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다. 가장 길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로마서는 서간 형태를 띤 논문이 아니냐는 주장이 가끔 제기될 정도로, 내용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짜임새도 두드러지게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일찍이 16세기 종교 개혁가 칼뱅도, “이 서간 전체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로마서만큼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끼쳐 온 서간도 없다.
사실 로마서 본문은 성경 주석의 역사에서 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오리게네스를 비롯하여 요한 크리소스토모, 테오도레투스, 펠라기우스, 아우구스티노, 아벨라르, 토마스 아퀴나스 등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로마서를 해설하였다(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암브로시오의 작품으로 간주되다가 암브로시아스테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바오로 서간 주석서도 포함된다). 로마서의 해석은 교회 역사상 특히 두 시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5세기와 16세기인데, 5세기에는 펠라기우스가 등장하여 사람이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라는 구원의 무상성(無償性)을 둘러싸고 일대 위기를 맞아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는 1516년에 로마서 주석서를 펴낸다. 많은 역사가는 이 책이 바로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칼뱅이 개신교 최고의 신학 저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그리스도교 요강(要綱)’의 제2판(1539)을 준비하고 또 그의 교리 명제들을 명확히 하는 데에, (1540년에 가서야 출판되기는 하지만) 그의 첫 성경 주석서인 ‘로마서’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종교 개혁가들은 이렇게 이 서간을 특별히 높이 평가한다. “사실 로마서는 모든 책의 심장이며 정수(精髓)다.”라고 루터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칼뱅도 “로마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이에게는 성경의 가장 비밀스러운 보고(寶庫)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독일 종교 개혁가로서 루터를 보조하고 대리하기까지 한 멜란히톤에게도, 로마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요약”이다. 그의 대표작 ‘신학요론’(Local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은 사실 로마서를 설명해 놓은 책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여 로마서에 관한 신학적 고찰이 개신교 최초의 조직 신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에도 개신교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이 서간을 주석하였다. 여기에서 특히 현대 신학적 사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의 주석서(1919년)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로마서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개신교 신학자들은 일종의 ‘편향주의’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 개신교 주석가(Fr. J. Leenhardt)는 주저 없이 이러한 상태의 “불균형”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반면에, 가톨릭 신학자들은 코린토 1서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