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편지

엄마의 편지

가르멜에 들어오기 전 제 영혼의 성장기는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제1기는 짧지만 여러 가지 추억이 많은 시기로, 사리분별이 시작된 때로부터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때까지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은혜로 머리가 일찍 트여 어릴 적 기억을 추억으로 새겨 두었기 때문에 지난 일이 어제 일처럼 생각납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좋은 엄마를 보내 주시고, 잠깐 있다 하늘나라로 데려 가시면서, 그런 엄마를 잊지 말라고 좋은 머리를 주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평생을 사랑에 감싸여 살게 해주셨는데, 최초의 기억은 미소와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너무도 큰 사랑을 제 주위에 두셨지만 저의 작은 가슴에도 사랑을 심으시어 제가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또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었으므로 부모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애정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아래 엄마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방법은 때때로 유별난 것이었습니다. “아기는 장난꾸러기인데다 엉뚱해. 내 볼을 비비다가 엄마가 죽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꾸중을 하면 그 애는 아주 놀란 표정으로 ‘그렇지만 난 엄마가 천국에 갔으면 좋겠어서 그러는걸! 죽어야 천국 가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잖아.’라고 한단다. 애정이 폭발하면 아빠에게도 죽으시라고 그래.”

제가 두 돌 반이던 1874년 7월 25일 엄마는 저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네를 매셨는데 셀린도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아기가 그네 타는 것을 네가 봤어야 해. 그네에서 씰룩대는 모습을 보면 속에는 다 큰 애가 든 것 같아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단다. 아등바등 줄에 매달려서는 그네가 조금 느슨하게 움직이면 더 세게 밀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줄을 매어서 아기 몸을 붙들어 놓기는 하지만 그네가 치솟으면 여전히 내 마음은 불안하다.

내가 아기로 인해 이상한 일을 겪었다. 나는 새벽 미사 다니는 사람인데 처음 며칠은 아기를 혼자 두고 갈 엄두가 안 나 못 가다가 아기가 새벽에는 한 번도 깨지 않는 것을 보고 혼자 뉘어 두고 가기 시작했다. 아기를 내 침대에 눕히고 아기침대를 바싹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해 놓았지. 그런데 어느 날 아기침대 붙이는 걸 깜박하고 말았다. 돌아와 보니 아기는 그 자리에 없고 어디서 조그맣게 찡얼대는 소리가 들렸어. 보니까 아기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의자에 올라앉아 있더구나. 등받이를 베개 삼아 앉은 채 불편한 잠을 자고 있었단다.

누워 있던 아기가 어떻게 그 의자로 떨어져 앉아 있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를 노릇이지. 아기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주님의 섭리라고 느껴졌다.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아기의 수호천사가 아기를 지켜 주시고, 아기를 위해 내가 매일 기도하는 연옥의 영혼들이 아기를 보호해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지. 너도 그렇게 생각되니?”

편지 끝에 엄마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아기가 방금 손을 내 얼굴에 대고 뽀뽀를 하는구나. 이 귀염둥이는 한시도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고 언제나 내 옆을 졸졸 따라다녀. 뜰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것도 나와 함께여야 좋지, 내가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울기 때문에 데려와야 해.”

또 다른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저번에 데레사는 자기가 천국에 가겠냐고 물어보더라. ‘그래,’ 착하면 간다라고 대답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구나. ‘응, 그럼 안 착하면 지옥에 가겠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돼. 내가 천국으로 엄마한테 날아갈 거야. 엄마가 나를 꼭 안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를 데려가실 수 있겠어?’ 엄마 품에 있으면 하느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으리라고 진짜로 믿고 있음을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리가 막내 동생을 아주 사랑한다. 착하다고 칭찬이 자자한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막내는 조금이라도 마리 언니를 거스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거의 공포에 가까워. 어제는 아기가 장미꽃 받으면 어떻게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한 송이 따 주려고 했더니, 마리가 꺾지 말라고 했다면서 제발 그만두라고, 마음이 안 좋은지 얼굴까지 상기돼서, 나보고 애원을 하더구나. 그래도 내가 장미꽃 두 송이를 꺾어 주었더니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아. 장미는 마리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말해 줘도, ‘아니야, 장미는 마리 언니 거야.’라고 우기니, 소용이 없었어.

감정이 얼마나 풍부한지, 뭔가를 잘못하면 즉시 모든 사람이 알게 돼. 어제는 실수로 벽지 한 귀퉁이를 찢고서 그 일을 당장 아버지께 고해야 한다고 어찌나 초조해하던지 가엾을 정도였어. 네 시간이 지나 아빠가 돌아오셨을 때는 모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애가 급히 마리에게 달려가서 ‘빨리 아빠한테 내가 벽지를 찢었다고 말해.’라고 하더구나. 그러고서 법정에 선 죄수처럼 선고를 기다리는데, 사실 그 애 생각은 자백하면 용서는 쉽게 받는다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