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저는 대모님을 아주 좋아했습니다.7 또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들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 그런 표는 내지 않았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분별력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리 언니가 셀린 언니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을 유심히 들었고, 언니가 가르치는 대로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마리 언니가 성모 방문 수녀회 기숙 학교를 그만두고 셀린 언니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며 있었는데, 공부 시간이면 저도 거기 있고 싶어서 아주 얌전하게 굴고 언니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했습니다. 큰언니는 제게 이것 저것 뭘 많이 선사해 주었는데, 큰 선물들은 아니었지만 무척 기뻤습니다.
셀린과 마리 두 사람이 제 마음속 자랑스러운 언니들이라면, 폴린 언니는 저의 이상적 존재였습니다. 제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가 뭘 물으시면 항상 “폴린!” 하고 대답했습니다. 손가락을 유리창에 대고 휘휘 움직이며 “폴린이라고 쓰고 있어!”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폴린 언니를 두고 필시 수도자 될 사람 같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도 될 테야!’ 하고 마음먹곤 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수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첫 기억이며, 이후로 이때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당신을 통해 예수님의 신부로 선택되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 오려고 준비하던 시절에는 당신께서 이미 집을 떠나셨을 때였지만 우리의 영혼은 헤어진 적 없었어요. 당신은 저의 이상이었으니 저는 당신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었고, 세 살 아기 때부터 제가 순결한 영혼들의 정배가 되시는 분께 끌린 것은 원장 수녀님께서 모범이 되어 주신 덕분입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 얽힌 그리운 추억들이 많고도 많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레오니 언니도 아주 좋아했고, 언니도 저를 무척 귀여워해 줬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가족들은 모두 외출하고 레오니 언니가 집에서 저를 돌봐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언니가 부르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언니는 저와 재미있게 놀아 주려 했고, 저도 언니를 힘들게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레오니 언니가 첫영성체하던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특히 언니가 저를 안고 사제관에 들어갈 때, 같은 흰옷을 입고 언니에게 안겨 가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저는 아기라서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일찍 자러 가야 했지만, 아빠가 중간에 잠깐 저에게 파티 케이크를 갖고 오셔서 당신의 어린 여왕도 맛보게 해주시던 것도 생각납니다.
그다음 날이나 혹은 그 다다음 날, 우리는 엄마와 함께 레오니 언니의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날 가난한 다고로 부인이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식사 후에 엄마가 우리를 담 뒤로 데려가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엄마는 착한 다고로 부인의 기분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고 우리에게도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아, 정말 엄마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세심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또 얼마나 다양하고 의외인 경우가 많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