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셀린 언니
그리고 이제, 어렸을 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던 셀린 언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셀린 언니에 관한 추억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성모 방문 수녀회 학교에 있던 당신께 보낸 편지 중에서 몇 구절을 골라 쓰겠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인 1873년, 7월 1일 엄마는 이렇게 써 보내셨습니다. “목요일에 유모가 데레사를 데려왔는데 아기가 웃기만 해. 특히 셀린이 조금만 얼러도 자지러지듯이 웃는다. 놀이를 하며 놀고 싶은 건가 하는데, 아직 이르지만 아마 곧 그렇게 놀겠지. 양다리를 앙증맞게 세우며 꼿꼿이 서는 걸 보면 빨리 걸을 것 같다. 성격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고 얼굴은 아기 천사야.”
유모 집에서 돌아온 후 특히 셀린 언니에게 애착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마음이 잘 통했지만 성격은 제가 더 활발하고 꾀가 많았습니다. 언니와는 세 살 터울이지만 동갑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 편지를 보시면 셀린 언니가 얼마나 성격이 좋고 저는 그 반대였는지 아실 겁니다. “셀린은 선한 것에 끌려. 천성인데, 그래서 티가 없이 맑고 악을 두려워하지. 데레사는 어떻게 클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워낙 어리고 워낙 아무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셀린보다 영리하지만 셀린처럼 순하지 않고 또 고집이 황소야. 그 애가 한번 ‘아니.’라고 하면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온종일 지하 저장고에 가둬 놓더라도 그 애는 ‘잘못했어요.’라고 하지 않고 아예 거기서 자고 있을 거다. 반면에 다정이 넘치는 마음씨야. 너무 사랑스럽고 속이 환해. ‘엄마, 내가 셀린 언니를 한 번 떠밀고 한 번 때렸어. 그렇지만 다신 안 그럴 거야.’ 이거 털어놓으려고 내 뒤를 졸졸 쫓아 다니는 거 보면 신기해. 데레사가 하는 것은 다 그래. 목요일 오후에 정거장 쪽으로 나들이를 갔는데, 아기는 폴린 보러 가는 거라고 기어코 대합실로 들어가겠대. 결국 신나게 앞장서 뛰어가는데, 보면 재밌어. 하지만 우리가 폴린한테 가기는커녕 기차도 안 타고 발길을 돌리니 집으로 오는 내내 울더라.”
편지의 이 마지막 구절은 당신이 학교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날 느꼈던 행복감을 회상시켜 주는군요. 어머니께서는 저를 안고 마리 언니는 셀린 언니를 안았지요. 그때 저는 수천 번도 더 당신을 쓰다듬으며 당신의 땋아 올린 머리채를 넋을 잃고 쳐다봤어요. 또 당신께서 석 달 열흘 싸 두었던 납작해진 초콜릿도 주셨어요. 그것이 제게는 성물과도 같았던 걸 상상이나 하실까요?
처음으로 기차를 탔던 날도 생각납니다. 엄마와 단둘이 기차 타고 르망에 갔는데 여행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가 울음보가 터져서, 가여운 엄마는 울다 지쳐 눈이 부르튼 웬 여자 아이 하나를 르망 이모께 인사시켜야 하셨지요. 그 곳에서의 일은 다른 건 기억이 안 나고, 이모가 생쥐 모양 장난감 한 개와 작은 사탕 바구니를 주셨는데, 제 손가락 굵기의 고리 모양 사탕 두 개가 맨 위에 있었어요. 제가 그걸 보자마자 “아, 예뻐! 하나는 셀린 언니에게 줘야지.”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한 손으로 바구니 손잡이를 쥐고 다른 손으로 엄마 손을 붙잡고 조금 가다가 바구니를 보니, 사탕이 거진 다 흘러 길에 엄지왕자의 조약돌처럼 뿌려져 있었습니다. 다시 바구니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귀중한 반지 사탕 두 개 중 하나도 다른 사탕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더군요. 셀린 언니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정말 아쉬운 노릇이었습니다. 돌아가서 주워 오게 해 달라고 엄마에게 말해 보았지만 들은 체도 안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엄마는 저처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서러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