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

나의 성격

이제 다시, 엄마가 셀린 언니와 저에 대해 써 보내셨던 편지 구절들을 몇 개 옮겨 보겠습니다. 여기에 제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의 결점들이 빛을 발하며 전면에 드러나는 대목도 있습니다. “셀린과 아기가 블록 쌓기를 하며 놀 때 보면 가끔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러면 셀린이 양보하고 만단다. 천상의 면류관에 진주알을 하나 더 박는다는 마음으로 양보하지. 안됐지만 더 늦기 전에 아기의 성질머리를 고쳐 줘야겠구나. 아기는 무슨 일이든 제 뜻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려고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세상 끝난 것처럼 땅 위를 구르고 심할 때는 까무러치기까지 한다. 신경이 예민해서인데, 반면 아주 착하고 영리해. 또 기억력이 비상해.”

원장 수녀님,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아이였는지 아시겠지요! ‘잠드니 천사구나.’라는 말이 제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낮에 놀 때보다 밤에 잘 때 더 부산스러웠거든요. 이불은 다 걷어차고, 잠결에 침대 난간을 손으로 두드리고 머리로 찧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픔에 잠이 깨어 “엄마, 나 부딪혔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엄마는 자다가 일어나서 저를 살피러 오셔야 했지요. 그리고 이불을 잘 덮어 준 다음 주무시러 가셨습니다. 그러나 금방 다시 이 부딪고 찧는 소동을 시작했기에 저를 침대에 붙들어 매야 할 지경이었어요. 밤마다 셀린 언니는 이 괴팍한 동생이 다치지 않고 엄마도 깨시지 않도록 저를 끈으로 잡아매러 여러 번 오곤 하였습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어서 매 놓으면 조용히 잘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저에게는 다른 단점이 또 하나 있었는데, 엄마 편지들 중에는 안 나옵니다. 저는 자기애가 아주 강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까 봐 두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데레사야, 네가 땅에 입을 맞추면 동전을 하나 줄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동전 한 개는 저에게 큰 재산이었습니다. 어차피 자그마한 덩치, 제 입술과 그 땅과의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어서, 그 돈을 얻기 위해 몸을 숙인다고 그다지 품위가 깎일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입을 땅에 댄다는 문제는 제 자존심이 이를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똑바로 서서 “아, 싫어요, 엄마. 그 돈은 안 갖는 게 더 나아.” 하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또 한번은 ‘그로니’에 있는 모니에 부인 댁에 가게 된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마리 언니를 시켜 레이스 달린 연하늘색 드레스를 입히게 하면서, 햇볕을 가리게 팔 소매를 걷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평범한 아기들처럼 누가 입혀 주는 대로 무심한 척 가만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팔을 내놓으면 얼마나 더 예쁠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성격이 이러했기 때문에 만일 제가 상스런 부모 아래에서 자랐거나, 루이즈8가 셀린 언니에게 해 줬던 것처럼 제 응석도 다 받아주었다면 저는 아주 나쁜 아이가 되거나, 영원한 멸망의 길로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린 약혼자를 지켜보시며 모든 것이 저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결점조차 이를 일찌감치 바로잡으시어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기적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누가 저에게 어떤 어떤 짓은 하면 안 된다고 한번만 가르쳐 주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8. 마르탱 부인이 죽기 전까지 마르탱 씨 집의 하녀였다.

제가 점점 커갈수록 엄마에게 큰 보람을 주었다는 것을 엄마의 편지에서 보니 기쁩니다. 자라면서 제 눈앞에는 가족들의 좋은 본보기만 보일 뿐이니, 자연히 그것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1876년에 어머니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어떨 땐 데레사마저 작게라도 희생 보속을 바치고 싶어 한단다. 사랑스럽고 예민하고 활달한 아이면서 정도 아주 많아. 셀린과 아기는 둘이 정말 잘 논다. 둘이 붙어 있기만 하면 심심한 줄을 모르고 놀아.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셀린은 자기 수탉을 붙잡으러 가서는 데레사의 암탉까지 한꺼번에 잡는단다.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인데, 그 애는 어찌나 빠른지 한번에 펄쩍 뛰어서 잡는구나. 그러고는 둘이서 나란히 닭을 가지고 난로 옆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단다(제 유모였던 로즈가 제게 조그만 닭을 한 쌍 선물했는데 저는 수컷을 셀린 언니에게 주었습니다). 저번에 셀린은 나와 함께 자고 데레사는 2층 셀린의 침대에서 잤는데, 셀린이 데레사를 데려와 달라고 루이즈에게 조르더구나. 루이즈가 아기를 찾으러 올라가 보니 침대는 텅 비어 있었지. 데레사는 그전에 셀린의 소리를 듣고 이미 침대를 내려왔고 그새 셀린에게 와 있었어. 루이즈가 와서 옷을 입혀 주려고 해도 ‘루이즈, 싫어요. 우리는 암탉 친구들처럼 둘이 서로 떨어지지 않아요.’ 하고 대답하면서 셀린을 꼭 안은 채로 있었단다. 저녁에 루이즈, 셀린, 레오니는 교회 모임에 가고 데레사만 혼자 남았지. 데레사는 자기가 너무 어려서 그런 데 낄 수 없음을 수긍하고, ‘잠이라도 셀린의 침대에서 자게 해 주세요!’ 하고 요구하더구나. 하지만 안 되는 일이고, 아기는 입을 꼭 다문 채, 10분 넘게 제 침대 램프만 쳐다보다가 곯아 떨어졌지.”9

9. 1876년 11월 8일에 마르탱 부인이 폴린에게 쓴 편지다.

엄마는 또 이렇게도 쓰셨습니다. “셀린과 데레사는 서로 죽고 못산다. 보통 아이들 이상으로 정말 다정스레 지낸단다. 마리가 공부를 가르쳐 주려고 셀린을 데리러 오면 아기는 금방 눈물을 글썽거리지. 진짜 이별이라면 대체 어쩌겠니! 마리가 불쌍하게 생각해서 함께 데리고 가면 아기는 의자에 앉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가만있어. 아기에게 구슬 꿰기나 헝겊 잇기를 하며 있으라고 놀잇감을 주면 꼼짝도 않고 하다가, 가끔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보면, 고리에서 실이 빠졌을 때야. 그걸 다시 끼우려고 하지만 잘 되지는 않고, 그렇다고 감히 주의를 끌어 공부를 방해할 엄두도 못 내고…… 곧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른단다. 마리가 달래며 실을 꿰어 주면 작은 천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방긋 웃는다.”10

10. 1877년 3월 4일에 마르탱 부인이 폴린에게 쓴 편지글.

저는 정말 셀린 언니 없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 셀린 언니가 식탁에서 일어나면 바로 따라가고 싶어서, 달콤한 디저트도 팽개치고 의자에서 내려 달라고 방방 뛰다, 기어이 같이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우리는 가끔 지사 관저에 가서 그 집 막내딸과 놀기도 했는데, 놀이터도 있고 좋은 장난감이 많아서 거기서 노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거진 셀린 언니 때문에, 셀린 언니를 기쁘게 해 주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갔습니다. 사실 저는 거기보다 우리 집 정원에서 노는 걸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정원 담벼락에서 반짝이는 돌비늘을 긁어내 아빠에게 가져가 팔면, 그것을 아빠가 아주 정중하게 사 주셨는데 그 놀이가 더 재밌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주일 미사에 갈 수 없었으므로 엄마가 남아 돌봐 주셨습니다. 비록 집에 있었지만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아주 얌전해져서 걸음도 발끝으로만 사뿐사뿐 걸었습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가족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미사 옷’으로 예쁘게 단장한 셀린 언니에게 달려가서 “셀린 언니, 빨리 강복받은 빵 줘!” 하고 외쳤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언니가 미사에 너무 늦게 갔기 때문에 빵을 받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빵이 나름의 미사였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없어? 그럼 언니가 만들어!” 말하자마자 그게 이루어졌습니다. 셀린 언니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찬장을 열어, 빵을 꺼냈고 거기서 한 조각을 잘라냈습니다. 그다음 그 위에 대고 엄숙하게 ‘성모송’을 한 번 외우더니 저에게 주었습니다. 저도 성호를 긋고 열렬한 마음으로 빵을 받아서 먹었는데, 맛이 ‘강복받은 빵’과 똑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