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외의 나의 학교
알랑송을 떠나 이사를 갈 때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란 변화를 좋아하니까요. 저는 기쁜 마음으로 리지외에 왔습니다. 여행 도중에 외삼촌 댁을 방문했던 것이 기억납니다.20 잔 언니와 마리 언니21 가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착한 사촌들과 노는 게 참으로 좋았고, 외숙모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다만 외삼촌은 조금 엄하셔서 외삼촌 댁에 있으면 아무래도 집에 있는 것만큼 마냥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22
그 당시에 원장 수녀님께서는 날이 밝으면 제 곁으로 오셔서 하느님께 제 마음을 바쳤는지 물어보시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며 옷을 입혀 주셨지요. 그러면 저는 당신 곁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과 함께 읽기 공부를 했는데, 제가 혼자서 처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천국이라는 글자였습니다. 마리 언니는 쓰기 공부를 책임지고, 당신은 그 밖의 모든 것을 맡아 가르쳐 주셨지요. 쉽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한번 배운 것은 절대 까먹지 않았습니다. 교리 문답과 특히 교회사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이 과목들은 재밌었지만, 문법은 여러 번 저를 울렸습니다. 남성형이니 여성형이니 문법을 어려워하던 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공부가 끝나면 저는 옥상 정자로 올라가 아빠에게 제가 받은 배지와 점수를 보여 드렸습니다. 아빠에게 “하나도 틀리지 않고 5점23을 받았어. 폴린 언니가 그렇게 해 줬어!” 하고 말할 수 있을 때에는 얼마나 기뻤는지요. 제가 당신께 하나도 틀리지 않고 5점을 받았냐고 물어보았을 때, 제가 보기에는 1점이 부족한 것 같았는데도 당신께서는 5점을 받았다고 대답해 주셨거든요. 저는 자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여러 번 좋은 점수를 받으면 상을 받고 공부를 하루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쉬는 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긴 하루처럼 느껴지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보고 당신께서는 제가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기뻐하셨지요. 오후에는 매일 아빠와 함께 가벼운 산책을 갔습니다. 날마다 다른 성당으로 성체 조배를 다녔지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가르멜 수녀원24의 성당에 들어가 보았는데, 아빠는 성당 안쪽의 쇠창살을 가리키시며 그 뒤에 수녀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는 9년 후에 그들 가운데 제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