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과 주일
축일! 아,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지요! 축일, 저는 이날을 참 좋아했습니다! 당신께서 각각의 축일이 갖고 있는 깊고 미묘한 의미를 잘 설명해 주셔서 모든 축일이 제게는 천국의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특히 성체거동聖體擧動이 좋았습니다. 하느님의 발자국마다 꽃을 뿌리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그러나 꽃잎을 하느님의 발자국마다 떨어뜨리기 전에, 그것을 있는 힘껏 높이 들어 올려서 장미 꽃잎이 거룩한 성광聖光을 스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었습니다.
축일! 큰 축일은 드물었지만 주간마다 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날이 돌아왔으니 그것은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이란 얼마나 기쁜 날인지요! 주일은 하느님의 축일이자 휴식의 축일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오래 침대에서 빈둥대고 있으면, 폴린 엄마가 코코아를 대령해 오고, 어린 여왕 같은 예쁜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머리 단장은 마리 언니가 해 주러 왔는데, 머리카락을 지지려면 잡아 당겨야 하기 때문에 제가 늘 얌전하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온 식구가 함께 주일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아빠와 손을 잡고 미사 드리러 가는 길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길 가는 도중은 물론이고 성당 안에서까지 ‘아빠의 작은 여왕’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강론을 들으러 본당으로 내려갈 때에는 빈자리를 나란히 두 개 잡아야 했습니다. 그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그토록 어린 소녀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이를 누구나 아름답게 여겨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위원석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우리를 보고 언제나 반가워하셨습니다. 그 아저씨는 저를 보시면 근심이 사라진다고 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남들이 쳐다보는 것에 조금도 불만이 없었고, 비록 강론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최초의 강론은 뒤셀리에 신부님이 하셨던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강론이었는데, 그때부터 다른 모든 강론의 뜻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강론에 데레사 성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빠는 제게 몸을 굽히고 가만히 “작은 여왕님, 잘 들으세요. 네 수호성인의 이야기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강론도 잘 들었지만, 사실은 강론하는 신부님보다 아빠를 더 자주 쳐다보았습니다. 잘생긴 아빠의 얼굴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때로는 아빠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진리 속에 즐겨 잠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빠에게는 목적지까지 아득히 먼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의 눈앞에 아름다운 천국이 열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하신 손으로 그 충실한 종의 눈물을 닦아 주실 때까지는 아직도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다시 주일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가던 그 즐거운 날에도 우울한 점은 있었습니다. 주일 저녁기도 시간이 될 때까지는 제 기쁨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드리는 동안 저는 이 휴식의 하루가 끝나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세상살이가 다시 시작되어 사람들은 일하러, 공부하러, 또 뭐 뭐 하러 돌아가야 하는 것이니, 세상이 유배지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휴식, 영원히 계속되는 하느님 나라의 주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뷔소네로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늘 하던 산책까지도 마리 언니나 폴린 언니 중에 한 명이 빠진 채 하는 거라서 슬펐습니다. 아빠가 외삼촌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리 언니나 폴린 언니가 외삼촌과 함께 주일 저녁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도 거기 끼어 남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저 혼자면 시선이 저 한 사람에게 집중될 텐데 이렇게 둘이 남게 돼서 더 좋았습니다. 외삼촌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재미있게 들었으나,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은 싫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푸른 수염’을 노래하셨는데 어찌나 크게 부르시던지 진짜 무서웠습니다.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을 때는 아주 기뻤습니다. 아빠와 집에 가는 길에 부드럽게 반짝이는 별들을 넋 나간 듯 올려다보곤 했는데, 금빛 진주처럼 빛나는 한 무리의 별들이 T자 모양으로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아빠에게 제 이름의 첫 글자가 하늘에 쓰여 있으니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땅 위의 것은 재미가 없어져 아빠에게 저를 끌고 가달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를 딛고 있는지 땅은 보지도 않은 채, 머리를 한껏 젖히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며 갔습니다.
겨울밤, 특히 주일 겨울밤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아, 제가 좋아하던 것은 체스 게임이 끝나고 나서 셀린 언니와 함께 아빠의 무릎 위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시거나, 무릎으로 우리를 잔잔히 흔드시며 영원한 진리가 담긴 시를 읊으셨습니다. 그런 후에 우리 가족은 자기 전 기도를 바쳤는데 작은 여왕은 그녀의 임금님 곁에 앉았습니다. 성인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아빠에게 밤 인사를 드리고 키스를 받았습니다. 막내인 여왕이 제일 마지막에 인사를 드리면, 임금님은 저의 양팔을 잡고 입을 맞춰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이런 일은 매일 저녁 똑같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두 번째 엄마인 폴린 언니가 저를 안아 침대로 데려다 주면, 저는 “폴린 언니, 오늘 나 잘했어? 작은 천사들이 내 옆으로 날아 다닐까?”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언제나 “그래.”였습니다. 만약 언니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면, 저는 울면서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마리 언니와 폴린 언니가 차례로 저에게 입 맞추고 내려간 후에, 저는 캄캄한 곳에 혼자 남아야 했습니다. ‘주위에 날아다니고 있을 작은 천사들’을 상상해 보려고 했지만, 어둠 속에서 금세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제 침대에서는 정답게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