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적 환시

예언적 환시

아, 이 가족 행사는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기쁨에 찬 저의 임금님을 볼 때는 앞으로 그에게 닥칠 큰 시련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하루는 하느님께서 이상한 환시로 이 고통의 암시를 주셔서 우리를 이 시련에 맞서 미리 준비시켜 주셨습니다.28

28. 이 환시는 1879년 혹은 1880년 여름에 아버지 루이 마르탱이 사업차 알랑송으로 출장 여행을 갔을 때 일어났다.

아빠는 며칠 전부터 여행 중이셨고, 돌아오시려면 아직도 이틀이나 더 남았습니다. 아마 오후 두 시나 세 시쯤이었는데, 해가 쨍쨍 내리쪼이고, 자연은 푸르른 녹음으로 한창 싱그러웠습니다. 저는 창가에 홀로 앉아 뜰을 내다보며 즐거운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건너편에 있는 세탁실 앞으로 아빠와 옷차림과 키가 같고, 걸음걸이도 같았지만, 다만 허리가 훨씬 더 굽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얼굴에 회색의 보 같은 것을 드리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빠의 것과 비슷한 모자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정한 보폭으로 제 미니 정원을 끼고 천천히 돌았습니다. 저는 즉시 어떤 초자연적인 공포를 느꼈으나, 금세, 아빠가 돌아오셨는데 저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숨으시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 아빠……!” 하고 크게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제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여전히 일정한 걸음걸이로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떼지 않고 그가 길 끝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반대편으로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이 예언적인 환시는 끝이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잠깐 동안의 일이었으나 제 마음속에 너무나 깊이 박혀서, 1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마리 언니는 제가 있던 방과 서로 트인 옆방에서 당신과 함께 있었지요. 언니가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제가 아빠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틀림없이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끼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놀란 마음을 숨기고 저에게 뛰어와서 무엇 때문에 알랑송에 계실 아빠를 불렀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금 본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마리 언니는 저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그것은 틀림없이 빅투아르가 저를 놀래키려고 앞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지나갔던 것일 거라고 말했지만, 빅투아르에게 물어보니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부엌에서 나온 일이 없었다고 잘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틀림없이 한 남자 어른을 보았고, 그는 아빠의 풍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셋이 숲 끝까지 가보았지만, 누군가 지나간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당신께서는 저에게 다시는 그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제가 보았던 그 이상한 환시가 마음속에 자주 떠올랐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그 환시가 숨겨 놓은 의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이 환시가 언젠가는 분명히 드러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마음속 깊이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금방 오지는 않았지만, 결국 14년이 지난 후 하느님께서 손수 그 비밀스러운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