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 학교 시절
제가 여덟 살이 되고 몇 달 있다가 레오니 언니가 학교를 마쳤고, 그다음 제가 그 기숙 학교33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지내는 때가 생애 가장 좋은 시절, 즐거운 때라는 말을 가끔 들었는데, 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보낸 5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마음 아픈 때였습니다. 만일 셀린 언니가 거기 없었다면, 저는 일년 열두 달 안 아픈 달 없이 병을 달고 살았을 겁니다. 모판 같은 가정에서 연한 뿌리로 살아 오던 애기 꽃이 온갖 야생의 화초들이 우악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데 땅으로 옮겨졌으니, 맨땅에서 스스로 양분을 찾으며 살아 남아야 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원장 어머님, 당신께서 저를 아주 잘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학교에 와 보니 또래의 학생들 가운데 제가 가장 우수했습니다. 그래서 월반을 하게 되었고 제가 올라간 반에는 열네 살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부는 잘 못했지만 학생들을 휘어잡는 능력이 뛰어났고 선생님들조차 그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한참 어린데도 거의 언제나 1등을 하고 모든 수녀들한테 귀염 받는 것을 알고는 평범한 철부지답게 그것을 시기하여, 제가 뭘 하건 시비를 걸며 갖은 방법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기가 세지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대항도 못하고 당신에게조차 괴로움을 하소연하지 못한 채 혼자 울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런 불행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가련하고 소심한 제 가슴만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다행히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서 마음 편히, 아빠 무릎에도 올라가고 그날 받은 점수도 알려 드리며 아빠의 키스를 받으면 근심과 걱정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첫 시험34성적을 아빠에게 알려 드릴 때 어찌나 기쁘던지요! 모세의 아버지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만점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제가 1등이어서 은배지를 받아 왔습니다. 아빠께서 상으로 동전 네 개를 주셔서 이것들을 상자 속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거의 매주 같은 종류의 작고 예쁜 새 동전들이 보태졌습니다. 교회에서 기부금을 모을 때나 축일에 제 돈으로 헌금을 하고 싶을 때 이 돈에서 하였습니다. 폴린 언니도 어린 막내가 좋은 성적을 낸 것을 기뻐하며 자신이 아끼던 예쁜 굴렁쇠를 제게 선물로 주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가정에서 누리는 이런 즐거움들이 저의 상처 받은 마음에 위로가 되었는데, 만약 그런 것이 없었다면 학교 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