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마리아께서 내게...
병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폴린 언니가 보내 준 편지였습니다. 그것을 읽고 또 읽어서 나중에는 거의 외울 지경이었습니다. 한번은 원장 수녀님께서 모래시계와 가르멜 수녀처럼 옷을 입힌 인형을 하나 보내 주셨는데,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외삼촌은 그 인형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인형 보면 가르멜 생각만 날 테니 치우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완전 반대로, 가르멜 생각을 해야 그나마 숨통이 트였습니다.
폴린 언니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즐거워서 언니에게 주려고 마분지로 소품들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가장 공들여 하는 일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데이지와 물망초 꽃으로 화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5월이라 바깥에는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기쁨이 넘쳐흐르는데 작은 꽃인 저는 시들시들 죽어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은 꽃 옆에는 ‘태양’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승리의 성모상’이었습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두 번이나 그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성모상입니다. 작은 꽃 데레사도 자주 이 은혜의 별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루는 마리 언니 방에서 누워 있었는데 아빠가 들어오시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마리 언니에게 금화 몇 개를 주시며 파리에 있는 승리의 성모 성당에 미사를 청하는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승리의 성모님께서 막내딸의 병을 낫게 해 주실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아, 나의 임금님의 이러한 신앙과 사랑이 얼마나 감동입니까! 일어나서 이제 병이 다 나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벌써 여러 번 다 나은 척하며 아빠를 실망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낫기를 바란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으려면 기적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이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승리의 성모님이십니다.
9일 미사 중의 어느 주일48에 마리 언니는 정원에 나가고 레오니 언니가 저와 함께 있었는데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워 있던 제가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 엄마.” 하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레오니 언니는 제가 이렇게 부르는 걸 자주 들었기 때문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그렇게 엄마를 부르다가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리 언니가 돌아왔는데 언니가 들어오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언니를 알아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큰 소리로 언니를 찾으며 “엄마!” 하고 불렀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버둥대는 통에 심신이 몹시 괴로웠고 지켜보는 마리 언니는 아마 저보다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언니는 자신이 곁에 있다는 것을 제게 알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자 마리 언니는 레오니, 셀린 언니와 함께 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자기 아이의 생명을 비는 어머니와 같은 정성으로 성모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 언니의 기도가 들어졌습니다.
제가 나을 수 있는 길이 세상천지에 없는지라 어린 저도 하늘의 모후께로 눈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불쌍한 처지를 봐 주시기를 온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승리의 성모상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인자함과 애정이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속 깊이 파고든 것은 동정 마리아의 황홀한 미소였습니다. 그 순간 괴롭던 것이 싹 다 없어지고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며 뺨으로 흥건히 흘러내렸습니다. 완벽한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아, 성모님께서 내게 미소를 지으셨구나, 나는 정말 복된 사람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말하면 이 행복이 사라질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스르르 아래를 보니 마리 언니가 저를 사랑스러운 듯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감동받은 듯 보였고 성모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걸 짐작한 것 같았습니다. 아, 사실 제가 천상 여왕의 미소로 은혜를 받은 것은 마리 언니가 정성을 다해 기도해 준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성모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언니는 “데레사는 나았어!” 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과연 작은 꽃은 다시 살아나고 저를 부드럽게 감싸주던 눈부신 햇살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실 것이었습니다. 은혜는 서서히 작은 꽃에게 내려와 부드럽고 달콤하게 꽃을 일으키고 힘을 불어넣어 5년 후에는 가르멜의 비옥한 토양에서 활짝 피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