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목요일은 쉬는 날이었지만, 전에 폴린 언니와 공부할 때와는 달리 편하게 놀지 못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옥상 정자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셀린 언니와 둘이 놀면 좋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대신 외사촌들과,35 그들의 이종사촌들36과 놀았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를 못해서 놀아도 노는 것 같지 않고 진짜 고역이었습니다. 재미있는 놀이 친구는 되지 못해도 걔들이 하는 대로 따라는 해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잘 되지 않고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율동을 잘 못해서 춤추며 노는 것이 제일 재미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별 공원’ 37에 가는 것이었는데, 거기 가면 뭐든지 제가 제일 잘했습니다. 다른 애들보다 더 예쁜 꽃을 많이 따고 그걸로 꽃다발도 잘 만들었기 때문에 사촌들이 저를 엄청 부러워했습니다.
또 다른 즐거웠던 시간은 운 좋게 외사촌 마리 언니와 단둘이 놀게 될 때였습니다. 마리가 셀린 동생과 놀 때는 셀린이 하자는 거 같이 하고 그러지 않는데 저한테는 선택권을 주었고, 그러면 저는 아주 기발한 새 놀이를 생각해 냈습니다. 언니와 저는 은수자 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두막에 살면서 조그마한 밭에 옥수수와 야채 몇 포기를 심어 먹고사는 최고로 가난한 은수자였습니다. 그리고 끊김 없는 기도 생활을 해야 했는데, 한 사람이 일하면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은 기도를 바치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수도자 티가 안 나게 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고, 가족들과 나들이 갈 때도 이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수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묵주 기도하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꼽아 가며 바쳤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가 간식 시간에 제 신분을 깜박 잊고 먹기 전에 크게 성호를 긋는 바람에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마리와 저는 언제나 생각이 같고 마음이 잘 맞았는데, 마음이 지나치게 잘 맞아 사고를 치는 날이 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리 언니에게, “나는 눈을 감고 있을게. 언니가 나를 끌고 가.”라고 했더니, 언니는 저에게 “나도 눈을 감을 테야.”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과 동시에 둘은 눈을 감고 걸었습니다. 인도人道를 걷고 있어서 차에 치일 염려는 없었습니다. 눈을 감고 걷는 것이 재미있어서 얼마 동안 신나게 가고 있었는데, 우리가 한 상점 앞에서 상자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옆에 세워 둔 것들까지 줄줄이 쓰러트려 버렸습니다. 거기 주인이 화난 얼굴로 나와 엎질러진 것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고, 두 가짜 맹인은 눈이 번쩍 떠진 채 있는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잔 언니가 걱정을 하며 나무라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 왔습니다. 잔 언니는 우리 둘을 떼어 놓아야겠다며 이후부터는 저를 데리고 걸었고, 마리는 셀린 언니와 같이 갔습니다. 이것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길에서 줄곧 다투던 셀린, 잔 언니들에게도 잘된 일이었습니다. 이로써 평화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