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언니가 집을 떠나다
그 즐겁고 달콤하던 추억을 회상하느라 이야기가 조금 뒤처졌습니다. 이제 슬픔의 시련에 대해 말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데레사가 특별히 사랑하던 폴린 엄마를 데리고 가셔서, 저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던 일입니다.
하루는 폴린 언니에게 언니와 둘이 먼 광야로 가서 은수자로 살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도 같은 바람이라면서 제가 다 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 틀림없지만, 어렸던 저는 곧이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폴린 언니가 마리 언니와 조금 있으면 가르멜에 들어간다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었을 때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가르멜이 뭔지는 몰랐지만 폴린 언니가 나를 버리고 수녀원에 간다는 것은 알아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언니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두 번째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때의 제 괴로운 심정을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한순간에, 산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삶이 그렇게 슬프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비로소 그것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고통과 이별이 끝없이 이어지기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아직 희생의 기쁨을 모를 때라 쓰라린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약한 존재였던 제가 힘에 한참 부치는 그 시련을 무사히 견뎌 낸 것은 크나큰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폴린 언니와 헤어지게 될 것을 미리부터 조금씩 알았더라면 제가 그토록 괴로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알게 되다니, 마치 가슴을 칼에 찔린 것 같았습니다.
원장 어머님, 당신이 얼마나 다정하게 저를 위로해 주셨는지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가르멜의 생활을 설명해 주셨는데, 아주 좋은 곳 같았습니다. 당신이 이야기해 주신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하느님께서 나를 숨기시려고 가르멜 수도원이라는 광야를 준비해 놓으셨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마음속에 조금의 의심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의 막연한 꿈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폴린 언니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 때문에 가르멜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르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내 제 마음은 아주 평화로워졌습니다.
이튿날 폴린 언니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 놓았더니 언니는 제 바람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조만간 가르멜의 원장 수녀님을 뵙게 해 줄 테니 제가 느낀 것을 그분께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잡힌 어느 주일날 듣자니 당황스럽게도, 외사촌인 마리 게랭 언니39도 가르멜의 수녀들을 만날 연령이 되니까 둘이 함께 있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40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혼자 만날 수가 없을까 고심하다가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마리 언니에게 우리가 원장 수녀님을 뵙는 특은을 받았으니 아주 얌전하고 공손해야 하고 우리의 비밀도 원장 수녀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니 한 명씩 잠깐 자리를 비켜주자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있지도 않는 비밀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에 내켜 하지 않았지만, 제 말을 받아들여 줘서 우리는 한 사람씩 차례로 원장 수녀님과 단둘이 만났습니다.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님은 저의 엄청난 고백을 들으시고 제 성소聖召를 믿어 주셨지만, 그래도 아홉 살 청원자41를 받을 수는 없으니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되도록 빨리 가르멜에 들어가서 폴린 언니가 착복식 하는 날 나는 첫영성체 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단념해야 했습니다.
40. 통상적으로 방문자는 가르멜 수녀를 대면해서 만나 볼 수 없다. 응접실 가운데는 창살이 있고 거기에는 검은 휘장이 쳐 있다. 방문자가 가까운 친척이거나 지원자거나 어린이일 때에만 이 휘장을 벗길 수 있다. –역자 주
41. 청원자請願者란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포스튈랑’이라고 한다 한다. 청원기請願期는 반년에서 1년이며, 그 후 세속 복장을 수도복으로 갈아입는 착복식着服式을 거쳐 '노비시아'라고 하는 수련기修鍊期를 보내는데, 이 기간은 활동보다는 기도의 기간으로 1년에서 3년 동안 계속된다. 이 기간이 끝나면 ‘노비스’(수련자)에게 서원을 허락하게 되는데, 서원에는 청빈淸貧, 정결貞潔, 순명順命의 서약이 있다. 이에 더하여 수도원마다 다르게 정하는 병자 간호, 빈민 구제, 선교 등의 네 번째 서원도 있다. –역자 주
또한 이날 저는 예쁘다는 칭찬을 두 번째로 들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틴의 데레사 수녀가 오셔서는 저를 보시자마자 저보고 예쁘다고 하셨습니다. 가르멜에 와서 이런 칭찬을 들을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그래서 면회가 끝난 후 하느님께 제가 가르멜 수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오직 주님 때문이라고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폴린 언니가 이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기까지 남은 몇 주 동안 저는 되도록 실컷 언니와 함께하려고 노력을 다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다시는 과자와 사탕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셀린 언니와 저는 이것들을 폴린 언니에게 매일 사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언니 곁에 있으면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0월 2일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주님의 꽃들 중에서 첫 번째 꽃, 몇 해 후에 수도원에 들어올 동생들에게 원장 어머니가 되어 주실 꽃을 주님께서 따 가신 눈물과 축복의 날입니다.
저는 아직도 폴린 언니가 마지막으로 입 맞춰 주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빠가 당신의 첫 희생을 바치러 ‘가르멜’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외숙모는 우리들을 데리고 미사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성당으로 오자 보고 놀랐습니다. 놀라건 말건 저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사방이 와장창 다 부서진들 내가 신경이나 쓸까 생각했습니다. 내 영혼은 슬픔에 잠겼는데 위를 보니 하늘은 맑게 푸르고 태양은 눈부시게 밝으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어머니, 혹시 제가 그때의 슬픔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가르멜에서 원장님을 다시 만날 거였으니 제가 그렇게까지 슬퍼할 이유는 없었지만, 당시에는 제 영혼이 유치해서, 바라 마지않는 최종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겪게 되어 있었습니다.
10월 2일은 저도 학교에 가는 날이라 슬프지만 등교하였습니다. 오후에 외숙모가 우리 자매들을 가르멜에 데려가 주셔서 창살 너머 폴린 언니를 보았습니다. 아,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제 영혼의 내력을 쓰는 이상 원장 수녀님께 모든 것을 말해야 되겠지요. 사실, 그 전의 힘든 시간들은 그때와 그 이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목요일마다 온 집안 식구가 언니를 보러 가르멜에 갔고 저는 맨 끝에 2, 3분 정도 겨우 겨우, 전에는 마음을 활짝 열고 이야기하던 폴린 언니와 대면했습니다. 그러니 울기만 하다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설 밖에요. 당신이 어린 동생들보다 오히려 사촌들과 더 많이 대화하셨던 것이 외숙모에게 하는 인사임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는 폴린 언니를 영영 잃어버렸구나!’ 하고 가슴속 깊이 탄식했습니다. 마음의 괴로움이 놀랍게도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으로 얼마나 정신이 나갔던지, 실제로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