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언니의 착복식

폴린 언니의 착복식

저를 뷔소네로 데려가기는 도저히 불가능했으므로 한동안 마리 언니도 고생스럽게 저와 함께 외삼촌 댁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폴린 언니의 착복식 날44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괴로워할까 봐 저 있는 데서 쉬쉬했지만 저는 그날까지 다 나아서 폴린 언니 보러 갈 거라고 수시로 말했습니다. 뭐, 하느님께서는 제 위안거리를 뺏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아니면 사실, 어린 동생이 아프대서 힘들어 하는 자신의 예비 신부를 위로해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이들이 혼인을 하는 날에는 시련을 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날은 천상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주님께서 다섯 번이나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까?45 그리하여 저는 폴린 엄마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고 그 무릎에 앉아 몇 번이나 언니를 쓰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신부 가운을 입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언니를 보고 또 볼 수도 있었습니다. 아 그날, 저는 비록 캄캄한 시련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참으로 멋진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휙 하고 지나가 버렸고, 저는 마차에 실린 채 폴린 언니와 멀리, 내 사랑 가르멜과도 멀리 멀리 떨어져 뷔소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다 나았으며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고 우겨봐도 소용없이 저는 다시 침대에 눕혀졌습니다. 아, 제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발작 증상이 재발했는데 첫 번째 것과 종류는 비슷하나 증세는 훨씬 더 심각해서 이미 사람 손을 떠났고 나을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상한 병이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악마의 작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에서 회복된 후 저는 그것이 꾀병이었다고 줄곧 생각했으며, 이 생각이야말로 제 영혼에 순교자적 시련이 되었습니다.

44. 1883년 4월 6일이다.

45. 데레사와 언니 네 명의 착복식 때 보인 암시暗示를 말한다. 다섯 번째 착복식은 1895년 2월 5일에 있었던 셀린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