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박사
저는 배운 것의 뜻은 쉽게 기억했지만, 외우는 것은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교리 문답만은 첫영성체 전에 거의 매일 쉬는 시간에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언제나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어쩌다가 한 글자라도 잊어버리면 안절부절못하며 괴로움으로 비참한 눈물이 솟아나서, 도맹 신부님이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난감해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저를 굉장히 좋아하셔서(울 때만 빼고) 저를 ‘꼬마 박사’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은 데레사라는 제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제 다음 차례의 학생이 자기 친구에게 물어 볼 교리 문답의 구절을 그만 잊어버렸습니다.56 신부님이 모든 학생들을 돌아가며 시켜 보셨으나 아는 사람이 없자, 다시 제게로 와서 어디 1등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가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한 저는 물어봐 주시기를 기다렸기 때문에, 똑바로 일어나서 물어보신 것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웠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첫영성체 이후 교리 문답에 대한 열성은 제가 기숙 학교를 나올 때까지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성적은 아주 좋아서 줄곧 거의 1등이었는데, 제일 잘했던 과목은 역사와 작문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모두 저를 대단히 총명한 아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게랭 외삼촌과 외숙모는 저를 올바른 판단력을 갖고는 있지만 무능하고 둔하며 배운 것 없는, 착하고 순한 아이로만 알고 계셨습니다.
56. 교리 문답은 대답뿐만 아니라 묻는 말도 외워야 한다.
그분들이 예전에도 그러셨고, 아마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제게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했고 그저 평범하기만 한 철자법을 사용했기에 사라들을 끌 만한 재주가 없었습니다. 바느질이나 자수, 그 밖의 일들은 수녀님들의 도움 덕분에 꽤 잘했지만, 일감을 다루는 제 솜씨가 서툴러서 사람들이 저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이 당신에게로만 향하기를 원하셨고, “현세의 즐거움이 저에게는 쓰디쓴 괴로움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한 저의 기도를 벌써 들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남의 칭찬에 전혀 무관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그것은 제게 꼭 필요한 은총이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제 앞에서 다른 사람의 재는을 칭찬하는 것은 보았으나, 저를 칭찬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재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또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민감하고 다정한 제 마음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있었다면 그에게 쉽게 제 마음을 허락했을 것입니다. 저는 동갑의 소녀들과 사귀려고 해 봤습니다. 그들 가운데 특히 두 사람을 사랑했고, 그들도 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아,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얼마나 좁고 변덕이 심합니까! 저는 금세 그들이 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둘 중에 한 친구가 집에 갔다가 몇 달 뒤에 돌아왔는데, 그 아이가 없는 동안 저는 그가 줬던 작은 반지를 소중히 간직하며 그 아이를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다시 만났을 때 매우 반가웠는데, 슬프게도 그 친구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제 사랑은 이해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깨닫고 더 이상 애정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게 지극히 충실한 마음을 주셔서, 제가 한번 사랑하기 시작하면 언제까지나 사랑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직도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셀린 언니가 수녀님들 가운데 한 분을 사랑하는 걸 보고 저도 언니처럼 하려고 했으나, 사람의 호감을 살 줄 몰라서 실패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무능無能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많은 불행을 제게서 막아 준 것이겠습니까! 이 세상의 우정에서 ‘쓴맛’만 맛보게 하신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모릅니다. 그런 무능함이 없는 마음으로는 날개를 잡혀서 잘리고야 말았을 테니, 그랬다면 어떻게 “날아가 쉴”(시편 55,7)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애정에 사로잡힌 마음이 어떻게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열렬한 애정이라는 독이 든 술잔을 마셔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영혼들이 이 거짓 빛에 홀려 불쌍한 나비들처럼 달려들어서 날개를 태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불이지만, 결코 태우는 법이 없는’ 하느님의 불이신 예수님께 날아 올라갈 수 있도록, 더 빛나고 더 가벼운 새로운 날개를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개로 날아서 사랑의 진실하고 부드러운 빛을 향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저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유혹에 너무나 약할 수 있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 눈앞에서 그 불을 보았다면 저는 아마 그 거짓 빛에 다 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빛이 제 눈에는 찬란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애정에서 저는 쓰라림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써 그것을 피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의 애정에 빠지지 않은 것은 결코 제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