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노 부인

파피노 부인

그해가 지나자 셀린 언니는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가엾은 데레사만 혼자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자 데레사는 바로 아프게 되었습니다. 기숙 학교에서 단 하나의 위안이란 셀린 언니와 함께 있는 것이었는데, 언니 없이는 ‘셀린의 작은 딸’이 도저히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세 살 때 기숙 학교에서 나왔습니다.58 이후에는 파피노 부인 댁으로 매주에 몇 차례씩 가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파피노 부인은 교육을 잘 받은 착한 분이었는데, 늙도록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고양이를 포함해 세 식구가 아담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처녀답게 고양이에 대해서는 좀 유난스러워, 고양이가 공책 위에 올라와서 가르릉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둬야 했고, 예쁘다는 칭찬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파피노 부인의 식구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나이 든 선생님이 걸어서 오기에는 저의 집이 너무 멀었으므로 선생님의 집으로 공부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공부하러 가면 보통 파피노 부인의 어머니인 코셍 부인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크고 맑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파피노, 데레사 아가씨가 왔어.” 하고 딸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파피노 부인이 앳된 목소리로 “저 여기 있어요, 어머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곧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이 공부는 (제가 받는 교육 외의) 세상을 알게 해 줬습니다. 그런 시간이 될지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책과 공책으로 빙 둘러져 있고 옛날식으로 꾸며진 방에 신부, 부인, 아가씨 등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코셍 부인은 자기 딸이 공부를 가르칠 수 있도록 그들과의 이야기를 최대한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많은 날에는 별로 배우는 것이 없었습니다. 책에 얼굴을 틀어박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이야기까지 전부 듣고 있었습니다. 허영심은 마음속에 참으로 쉽게 들어옵니다! 한 부인은 제 머리칼이 곱다고 하였고, 또 어떤 부인은 나가면서 제가 안 듣는 줄 알고 저렇게 예쁜 아이가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제 앞에서 하지 않았기에 더욱 귀에 솔깃하게 들렸고 제 마음을 은근히 즐겁게 해 줬습니다. 그것은 제가 자애심自愛心이 얼마나 많은지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아! 저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영혼에게 많은 동정심을 느낍니다. 꽃이 만발한 세상에서 길을 잘못 드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분명 세상이 고결한 영혼에게 주는 즐거움에도 고통이 섞여 있을 것이고, 그 고통이 닥쳤을 때 여러 가지 욕망의 유혹을 한순간의 찬미로 이겨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제 마음이 ‘철이 들 때부터 하느님께 들어 올림’을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단맛만을 보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감사의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혜서’에도 “악이 그의 이성을 변질시키거나 거짓이 그의 영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들어 올려진 것이다.”(지혜 4,11)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동정 마리아께서도 작은 꽃(소화)을 지켜 주셨고, 소화가 세상 사물과 접촉하여 더럽혀질 것을 바라지 않으셔서 활짝 피기 전에 그분의 동산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 행복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58. 1885~1886년도 2학기 중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