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자녀
성모님께 이 사랑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저는 대단히 괴로운 어떤 일을 했습니다. 긴 이야기지만 되도록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학교에 입학하고 바로 ‘거룩한 천사회’에 가입하였었습니다. 저는 복된 천사들, 특히 유배지와도 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저를 위해 하느님께서 친구로 짝지어 주신 천사들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이 회가 명하는 신심의 실천이 몹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영성체를 하게 되고 얼마 후에 다른 아이들은 ‘거룩한 천사회’ 리본 대신에 ‘마리아의 자녀’ 지원자 리본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리아의 자녀에 들어가 보지 못한 채 기숙 학교를 나왔습니다. 공부를 다 마치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학교를 오래 다닌 다른 학생들은 다 들어갔지만 저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특권이 부러웠다기보다는 언니들이 모두 ‘마리아의 자녀’였기에 그들만큼 천상 모후의 자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심정으로 기숙 학교에 가서 어떻게든 마리아의 자녀회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수녀님은 거절하지는 않으셨지만, 허락하는 조건으로 대신 일주일에 두 번 오후에 수녀원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제가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학교를 일찍 그만두는 바람에 친한 선생님이 없어서 좋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고 그저 담당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회합이 끝날 때까지 말없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에게 신경쓰는 사람 하나 없이 외톨이가 되어 공부가 끝나면 감실 쪽으로 올라가서 아빠가 데리러 오실 때까지 성체 앞에 있었습니다. 이 시간이 저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의 ‘오직 하나뿐인 벗’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예수님께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것이 심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제 마음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자기 자랑이 섞이기 마련이지요. 제가 수녀원에 오는 것은 오직 성모 마리아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가끔 정말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슬픔과 괴로움에 잠긴 마음을 넓은 뜰을 산책하며 달래던 때처럼, 제 마음속에 평온함과 힘을 주던 시의 구절을 되뇌었습니다. “인생은 네 집이 아니라 네 작은 배다!”59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어린 시절에 느꼈던 열정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인생을 배에 비유한 이 구절은 귀양살이를 견디도록 제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혜서’에도 “인생은 배가 높은 물결을 헤치고 갈 때와 같다. 한번 지나가면 자취도 찾을 수 없다.”(지혜 5,10 참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제 영혼은 무한 속으로 들어가서 벌써 영원한 곳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예수님의 입맞춤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모님께서 아빠, 엄마와 어린 네 천사60와 함께 저를 마중 나오시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저는 영원한 가정의 참된 삶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을 보기 전에 아직도 이 세상에서 많은 이별의 쓰라림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제가 마리아의 자녀에 들어가던 해에 제 영혼의 유일한 지팡이였던 사랑하는 마리 언니를 빼앗겼습니다.61 마리 언니는 저를 지도하고 위로하고 제가 덕행을 닦도록 도와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마리 언니만이 저에게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폴린 언니도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지만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폴린 언니와 떨어져, 언니와 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두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순교자 같은 괴로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폴린 언니는 영원히 제게서 사라져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슬픈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언니는 언제나 저를 사랑했고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으나, 제 눈에는 사랑하는 폴린 언니가 성녀가 되어서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폴린 언니가 불쌍한 데레사의 슬픔을 안다면 놀라서 전처럼 사랑해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언니에게 제 생각을 뷔소네에서처럼 다 고백하려고 했어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폴린 언니를 만나는 면회장에는 마리 언니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셀린 언니와 저는 마지막에나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겨우 가슴이나 졸일 시간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제 곁에는 사실 마리 언니밖에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언니는 제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제 세심증에 대해서 언니에게만 이야기했고, 언니에게는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저는 마리 언니가 신부님에게 고하도록 허락한 죄만을 고하고 하나도 더하지 않았으므로 저의 고해 신부님조차 제 나쁜 병을 조금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제가 극도의 세심증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세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직 마리 언니만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들과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은 바람까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니의 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만큼 언니를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