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풍경
언니의 결심을 알자마자 저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둔 뒤에 폴린 언니의 화실이었던 방에서 살았는데 그곳을 제 취향에 맞게 꾸몄습니다. 그곳은 진짜 시장 같기도 하고, 성물 수집장이나 신기한 물건들의 진열장이자 정원이고, 동시에 큰 새장 같았습니다. 한쪽 벽 위에는 검은 나무로 만든, 예수님의 모습이 없는 큰 십자가와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 몇 폭 걸려 있고, 다른 쪽 벽에는 분홍 면 리본, 가는 풀과 꽃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쪽 벽에는 열 살 때의 폴린 언니 초상화가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초상화 아래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새가 많이 든 큰 새장을 놓았습니다. 이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때문에 손님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나 작은 주인인 저만은 그것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거기에는 제 책과 공책들이 가득히 들어 있는 자그만 흰 책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놓여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언제나 성인과 성녀들의 작은 상과 조개껍질이 담긴 바구니, 궐련 갑 등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창문 앞으로 정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화분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제가 이제까지 본 것들 중에 가장 희귀한 꽃들입니다). 또 진열장 안쪽에는 꽃 상자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초를 심었습니다. 유리창 앞에는 파란 천으로 덮인 제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 한가운데에 사블리에 꽃과 요셉 성인의 상, 회중시계, 꽃바구니, 잉크병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절름발이 의자와 아름다운 ‘폴린 언니의 인형’, 침대, 이것이 제가 방에 둔 모든 것들입니다. 작은 지붕 아래의 이 방이 제게는 하나의 세상이었으니, 유명한 메스트르 작가처럼 저도 «내 방 안의 산책Promenade autour de ma chambre»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고, 방 안에서 몇 시간이고 공부도 하고 명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 언니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제 방은 완전히 매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곧 떠나야 할 마리 언니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리 언니의 인내력을 시험하듯 한 행동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언니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방문을 열어 줄 때까지 두드리고는, 문이 열리면 온 마음을 다해서 언니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앞으로 키스를 받지 못하게 될 때를 생각해서 간직해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언니가 가르멜에 들어가기 한 달 전에 아빠가 우리를 알랑송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알랑송으로의 첫 번째 여행과는 전혀 달랐고, 모든 것이 저에게는 슬픔이며 괴로움일 뿐이었습니다. 엄마를 위해 준비했던 도깨비부채 꽃다발을 깜박하고 가져오지 않아서, 엄마의 무덤 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모든 것이 다 괴로웠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는 은혜를 제게 주셨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하늘에서 받은 은총을 떠올리고는 감사의 마음이 넘칩니다. 제 마음이 너무나 변해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사실 «준주성범»에 나오는 “너희가 너희 행동의 주인과 관리자가 되어야지, 너의 행동의 종이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63라는 은혜를 바랐습니다. 이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저는 이 엄청난 은혜를 제 소원으로 이루어야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을 따라서 원하는 것처럼 보여서, 알랑송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우유부단한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행 도중에 레오니 언니는 언니는 성 글라라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급하게 들어가서 무척 슬펐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인데, 떠나기 전에 한번 안아 보지도 못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