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성녀가 된다는 것

큰 성녀가 된다는 것

저는 영웅전英雄傳을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삶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진실한 영광이란 없어지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얻으려면 훌륭한 과업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을 감추고 덕을 행하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마태 6,3)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프랑스의 영웅, 그중에서도 존경하는 잔 다르크 성녀의 애국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분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받은 격정과 하늘에서 내린 영감靈感을 저도 느끼는 듯했습니다. 그때 한 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지금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은 하늘의 빛에 비춤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제가 영광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위에서 쓴, 자신을 감추고 덕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한 제 영광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큰 성녀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약하고 불완전하였는지, 그리고 수도 생활을 일곱 해나 했는데도 늘 같은 자리인 것을 본다면 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큰 성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대담한 저 자신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게 아무 덕도 없으므로, 제 덕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덕과 거룩함 바로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 바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제 약한 노력에 만족하시며 저를 당신에게로 끌어 올리시고, 당신 공로로 덮어 주시어 성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저는 성덕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얼마 안 되어 그것을 시련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원래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병이 낫고 세 달 후에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알랑송으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그곳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었으므로, 어린 시절을 보낸 여러 곳들을 둘러보며 매우 기뻤습니다. 특히 엄마의 무덤 위에 엎드려 저를 언제나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했던 일은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껏 제가 바라던 세상을 비로소 알게 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병이 나은 이후 제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은 알랑송에 머물던 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었으며, 저는 환영과 귀여움을 받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알랑송에 머무는 보름 동안의 제 생활은 오로지 꽃밭이었고,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악의 마력은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지혜 4,12)한다는 ‘지혜서’의 말씀은 옳은 것입니다. 열 살 때에는 생각이 어려서 마음이 현혹되기 쉬우므로 제가 알랑송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하신 것을 큰 은혜로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함께한 친구들은 너무나 세속적이었고, 이 세상의 기쁨과 하느님 섬기는 것을 일치시키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제가 그 당시에 알고 지냈고 젊고 부유하며 행복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찾아갔습니다! 저는 성과 동산에서 그들이 삶의 평안을 누리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던 모습을 회상할 때, 그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오늘날 그들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지 자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태양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정신의 괴로움만 있을 뿐이며(코헬 1,2–3 참조)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난한 마음을 갖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