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피정

영성체를 준비하는 세 달은 빨리 지나갔고 곧 피정을 시작해야 했기에 줄곧 기숙 학교에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피정 동안에는 즐거운 추억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숙 학교에서 많은 괴로움을 당하기도 했지만 예수님을 기다리는 며칠간의 커다란 행복으로 이 괴로움은 충분히 보상되었습니다. 수도원 소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선생님들은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따로 돌보기가 쉬웠기에, 정말 어머니 같은 정성으로 돌봐 주셨습니다. 매일 저녁에 첫째 수녀님이 조그만 등불을 갖고 오셔서 침대에 누운 제 이마에 아주 다정하게 입을 맞추셨습니다. 그 자애로움에 감동하여 어느 날 저녁에는 그분에게 제 비밀을 고백하겠다고 말하고, 베개 밑에 두었던 ‘귀중한 작은 책’을 살그머니 꺼내서, 기쁨에 겨워하며 신나게 보여 드린 적도 있습니다.

아침에 학생들이 굉장히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저는 무척 좋다고 여겼으며 제가 그들 따라 행동하는 것도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혼자서 몸단장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빗겨 줄 마리 언니가 없었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옷방에 가서는 담당 수녀님에게 빗을 내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한 살이 된, 다 큰 아이가 자기 머리도 빗을 줄 모르는 것을 보시고 수녀님은 웃으시면서 제 머리를 빗겨 주셨습니다. 마리 언니처럼 살살 빗겨 주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울 수는 없었습니다. 전에는 마리 언니가 머리를 살살 빗겨 줘도 매일같이 소리를 질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피정을 하며 이 세상의 아이들, 특히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물게 제가 귀여움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리 언니와 레오니 언니가 아빠와 함께 매일 저를 보러 왔는데, 아빠는 패스트리 과자를 종류별로 다 사 오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괴롭지 않았으며 제 피정의 아름다운 하늘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도맹 신부님51의 훈화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메모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나중에도 잘 기억해 낼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도 적지 않았는데, 실제로도 잘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52 수녀들과 같이 여러 기도에 참여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레오니 언니가 준 커다란 십자고상을 선교 사제들처럼 허리띠에 차고 있었는데, 그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띄었습니다. 수녀들은 그 십자고상을 부러워하며 제가 ‘가르멜에 있는 언니’를 따라하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 사실 제 마음은 항상 폴린 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언니도 저처럼 피정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언니에게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니가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께 바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53 그래서 이 피정 기간은 언니의 서원식과 저의 첫영성체를 고대하며 지내는, 두 가지의 기쁨으로 가득한 날들이었습니다…….

51. 빅토르 루이 도맹 신부는 리지외 수녀원의 전속 사제였고, 고해 신부였다.

52. 데레사의 피정 수첩은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 문헌 보관소에 있다. 데레사가 다시 피정했을 때도 이 수첩을 사용했다.

53. 예수의 아녜스 수녀는 가르멜에서 서원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데레사의 첫영성체와 같은 날이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기침을 심하게 해서 양호실로 인도되었습니다(제가 아팠던 후로 수녀님들은 제게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보통 때보다 창백해 보이면, 바람을 쏘이게 하거나 양호실에서 쉬게 하셨습니다). 양호실에 있을 때 사랑하는 셀린 언니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니도 피정 중이었지만 제게 성화 하나를 주기 위해 저와 만나게 허락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성화는 ‘감실에 계신 하느님의 작은 꽃’이었습니다. 아! 언니의 손에서 이 기념품을 받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요! 그날따라 셀린 언니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첫영성체 전날 저는 두 번째 고해성사를 받았습니다. 총고해를 한 후 마음이 아주 평화로웠습니다. 하느님은 제 마음을 괴롭힐 한 조각의 구름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후에는 저를 보러 온 가족들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감동해 있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폴린 언니는 오지 못했지만 저는 언니가 마음으로는 항상 제 곁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폴린 언니는 마리 언니를 통해 제게 아름다운 성화를 보냈는데, 저는 이 성화를 자꾸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줬습니다. 저는 편지로 피숑 신부님에게 저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제가 머지않아 가르멜의 수녀가 될 것이니 그때는 저의 지도 신부가 되실 거라는 이야기도 써서 보냈습니다(이 이야기는 4년 뒤에 그대로 이루어졌으며, 제가 그분에게 마음을 열게 된 곳도 가르멜이었습니다). 마리 언니가 피숑 신부님의 편지를 가져왔을 때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모든 행복이 한꺼번에 밀려왔지요. 편지 중에도 저를 가장 즐겁게 했던 구절은 “내일 너와 폴린을 위해 미사를 드리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언니와 데레사는 5월 8일에 한층 더 결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일치를 이루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