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열망
첫영성체 다음 날도 역시 즐거웠지만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마리 언니에게 받은 고운 옷이며 선물도 제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오직 예수님만이 저를 만족시킬 수 있었으므로 저는 다시 그분을 모실 날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첫영성체 후 한 달쯤 지나서 주님 승천 대축일에 고해성사를 하러 갔는데, 저는 대담하게 영성체를 하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뜻밖에도 신부님이 허락하셔서 저는 아빠와 마리 언니 사이에 끼어서 영성체 난간에 무릎을 꿇는 행복을 가졌습니다. 아! 예수님의 이 두 번째 방문으로 저는 몹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자꾸 되뇌었습니다. 두 번째로 성체를 모신 후로는 하느님을 맞이하고 싶은 바람이 점점 커져 갔는데 다행히 큰 축일마다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행복한 날이 찾아오기 전날이면 마리 언니가 저를 무릎 위에 앉히고 첫영성체 때처럼 준비를 시켜 줬습니다. 한번은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다가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아마 제게 그 괴로움의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처럼 늘 안고 가실 거라고 말해 준 것이 기억납니다.
영성체한 다음 날, 마리 언니의 이 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괴로움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예수님께서 제게 많은 십자가를 지우실 거라는 확신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러자 평생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은 위로가 가득히 느껴졌습니다. 괴로움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면서 그 매력에 황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괴로움을 '사랑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는데, 그날부터는 정말 괴로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 이외에서는 기쁨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를 할 때에 자주 «준주성범»의 이 구절을 되뇌었습니다. “오! 형언할 수 없이 착하신 저의 하느님, 영원한 것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현세에서 순간의 쾌락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모든 육체의 즐거움이 저에게는 쓰디쓴 괴로움이 되게 해 주소서.”54 이 구절이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입술에서 저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이 말을 제 의지가 아니라 마치 사랑하는 어른이 일러 주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어린아이처럼 되풀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 바람을 채워 주셨는지, 어떻게 예수님만이 형언할 수 없는 저의 영원한 기쁨이 되셨는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제 소녀 시절을 먼저 말씀드려야 하는데, 제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아직 이야기할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