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가꾸는 일
속세를 떠나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영혼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위로를 주셨습니다. 집안에서 제가 제일 어렸기 때문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었는데, 어린이들의 영혼과 함께하는 경험에서 비로소 그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 하녀의 친척 부인이 어린아이 셋을 두고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 부인이 아픈 동안 어린 두 딸을 우리 집에 데려와 보살폈는데, 큰애가 겨우 여섯 살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그 아이를 보살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하는 말들을 굉장히 천진난만하게 믿어서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천상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면 희생도 참을 수 있게 되는 걸 보면, 세례성사는 영혼 안에 믿음, 소망, 사랑의 세 가지 덕의 싹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누구든지 양보하는 사람에게 장난감이나 사탕을 주겠다는 말로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는 대신, 천국에 갔을 때 아기 예수님께서 얌전한 아이들에게 주실 영원한 상에 대해 이야기해 줬습니다. 철들기 시작하던 첫째는 기쁨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아기 예수님과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귀여운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말투로 자신은 언제든지 동생한테 져 주겠으며, 제가 말해 준 것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순수한 영혼들을 바라보며 이들은 덕행의 모양뿐만 아니라 악의 모양도 새길 수 있는 연한 초와 같은 존재들이며, 철이 들 때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 어릴 때부터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덕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일을 하시는 데에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생명이 나게 하는 일은 도맡아 하시면서도, 영혼을 가꾸는 일은 사람의 손을 빌리고자 하십니다. 이는 마치 재주 있는 정원사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셔서 귀하지만 약한 화초를 가꾸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서투른 정원사가 어린 식물에 접을 잘못 붙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각 꽃나무가 가진 성질을 알지 못해서 만약 복숭아나무에 장미를 피우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좋은 품질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었을 그 나무를 죽게 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어떤 어린 영혼에게 바라시는 바를 잘 알아서 그분의 은총이 작용하도록 도와 드리되, 하느님의 뜻보다 앞지르지도 지연시키지도 말아야 합니다.
어미 새의 소리를 듣고 노래하는 법을 배우는 어린 새들처럼, 어린아이들도 세상에서 그들을 가르치도록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영혼들 곁에서 그분의 숭고한 사랑 노래, 즉 덕행의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기르던 새 중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카나리아 한 마리가 있었고, 또 아직 새끼일 때 주워 와서 제가 엄마처럼 보살펴 주던 작은 홍방울새도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가엾은 작은 새는 노래를 가르쳐 줄 어미도 없이 새장에 갇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나리아의 노래밖에 듣지 못했기에, 카나리아를 흉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홍방울새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홍방울새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카나리아의 쨍쨍 울리는 목소리와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작은 새가 애쓰는 것은 정말 귀여웠는데, 결국에는 성공했습니다. 아무래도 카나리아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웠지만 카나리아의 노래와 매우 비슷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제게 노래를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당신의 생각에 반했고, 지금은 당신을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되어 마음이 흐뭇합니다! 제가 원장 수녀님처럼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은 알지만, 비록 약하더라도 당신이 묵상하는 사랑의 찬가를 영원히 따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