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을 찾아가다

주교님을 찾아가다

제가 ‘가르멜’에 들어오기 전에 겪은 수많은 인생의 시련과 세상의 참혹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이야기를 하느라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서 너무 멀어졌습니다. 다시 제 성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0월 31일에 저는 바이외로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주교관에 간다는 생각에 가슴은 희망에 차고 몹시 두근거렸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언니들 없이 혼자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었고, 또 만나려는 분이 주교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먼저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주교님을 뵙고 찾아온 목적과 가르멜에서 받아 주기를 청하는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제 성소가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아, 이 여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요! 제가 수줍음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은 가끔 한계를 모르고 모든 경계를 넘쳐 흐른다. …… 사랑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게 하기 때문이다.”77라고 하신 말씀은 진실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사랑만이 저에게 이 어려움과 뒤따르는 여러 난관을 이겨 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크나큰 시련을 통해 제 성소를 이루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가르멜의 고독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지금, 그토록 열렬히 바랐던 하느님의 그늘 속에 쉬면서 저는 제 행복을 어렵지 않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얻지 못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훨씬 더 큰 괴로움이라도 서슴지 않고 견뎌 나갔을 것입니다.

77. «준주성범» 3권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