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은총

크리스마스의 은총

강하고 힘차신 주님을 모신 행복을 안고 자정 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벽난로 안의 내 슬리퍼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기뻤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오래된 관습을 몹시 좋아했기에, 셀린 언니는 식구 가운데 제일 어린 저를 계속 어린아이로 대하려고 이 관습을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아빠도 제가 그 ‘요술쟁이 신발’ 안에서 깜짝깜짝 놀라며 한 가지씩 신기한 물건을 꺼낼 때 행복해하셨고, 우리가 좋아하며 소리까지 지르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러한 제 임금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제 행복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가 어릴 적의 결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그 시절의 죄 없는 기쁨까지 거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정 미사 후에 피곤하신 아빠가 벽난로 안의 제 신발을 보고 귀찮아하시며 제 가슴을 꿰뚫는 이런 말씀을 하시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자, 다행히 올해로 끝이구나!”라고……. 그때 저는 모자를 벗으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셀린 언니는 제 감성을 잘 아는 까닭에 제 눈에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언니 또한 눈물이 글썽해졌습니다. 셀린 언니는 그만큼 저를 사랑했고, 제 슬픔을 이해했으니까요. 언니는 “아, 데레사야! 내려가지 마. 지금 신발을 본다면 너무 괴로울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데레사는 이미 예전의 데레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마음을 바꿔 주셨던 것입니다. 눈물을 참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서,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슬리퍼를 집어 아빠 앞에 놓고 여왕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모든 물건을 기쁘게 꺼냈습니다. 아빠도 웃으시며 다시 즐거워하셨기 때문에 셀린 언니는 꿈을 꾸는 듯 그 광경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다행히도 그것은 기쁜 현실이었으니, 어린 데레사는 네 살 반쯤에 잃었던 마음의 힘을 다시 찾았고, 그 후로 영원히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훌륭한 밤에 제 일생의 세 번째 시기, 즉 가장 아름답고 천상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항상 가지고 있던 착한 의향을 만족스럽게 여기셔서, 제가 10년을 두고도 못 이룬 일을 눈 깜박할 사이에 이뤄주셨습니다. 사도들처럼 저도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5)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보다 제게 더 인자하시어, 친히 그물을 치셔서 한 그물 가득히 고기를 잡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영혼의 어부로 만드셨습니다. 저는 어부가 되어 일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강한 열망은 그전까지 느껴 본 적 없었습니다. 제 마음 안에 애덕愛德이 깃드는 것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진을 보다가 거룩한 그분의 한쪽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피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것을 서둘러 받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은 쪼개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십자가 아래에 지키고 서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이슬을 받아, 그것을 영혼들 위에 쏟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목마르다.”(요한 19,28)라는 부르짖음이 쉴 새 없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 말씀은 제 마음 속에 열정이 타오르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 마실 것을 드리고 싶었고, 제 자신도 영혼의 갈증으로 목이 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를 이끈 것은 성직자들의 영혼이 아니라 죄인들의 영혼이었고, 영원한 불꽃에서 죄인들의 영혼을 끄집어내고 싶은 욕망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