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주성범»과 아르맹종 신부 강론집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몰라 헤매던 좁은 세계로부터 한순간에 저를 이끌어 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의 갈 길을 알려 주시는 것을 보며 깊은 감사를 드렸지만, 저는 거기에 합당해져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기는 했지만 제 앞에는 아직도 치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세심증과 지나친 감수성을 벗어나자 제 정신은 점점 건강해졌습니다. 저는 항상 큰 것,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는데, 이때는 극도의 지식욕에 사로잡혔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것과 내주시는 숙제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아서 혼자서 역사나 과학 같은 전문적인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과목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했지만 이 두 과목만은 흥미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단지 몇 달 동안에 여러 해 동안 공부한 것보다도 더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아, 이런 것들은 허영이요, 정신의 피로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학문에 대해 말씀하신 «준주성범»의 구절이 때때로 떠올랐지만, 저는 아직 공부할 나이니까 공부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함으로써 공부를 계속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 버린 것을 알고 있지만 제가 하느님을 거역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강한 지식욕이 도를 넘지 않도록 일정한 시간 동안만 공부에 집중했으니까요…….
어느덧 저는 소녀들에게 가장 위태로운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에제키엘이 예언 중에 말한 바를 제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에제 16,8–13)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제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위의 구절의 한마디를 들면서 그것이 제게 실현되었다는 것을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여러 은혜를 통해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하느님께서 풍성히 내리신 양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준주성범»을 ‘고운 곡식 가루 음식’처럼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복음에서 숨은 보배를 찾아내지 못했으므로, 이 책이 유일하게 제게 이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준주성범»의 모든 장을 거의 외우고 있었고, 그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 책을 여름에는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겨울에는 토시 속에 넣고 다녔는데, 이것이 그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것을 몹시 재미있어 하셨고, 아무 장이나 펴서 그 장을 저에게 외워 보게 하셨습니다. 열네 살 때, 하느님께서는 저의 알고자 하는 욕망의 고운 곡식 가루 음식에 꿀과 기름을 풍성히 더해 주실 필요를 느끼셨습니다. 이 꿀과 기름은 세상의 마침과 후세 생명의 신비에 대한 아르맹종 신부의 강론집에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아빠가 가르멜 수녀원에서 빌려 온 것이었는데, 아빠가 가지신 책들을 읽은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은 읽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평생에 받은 은혜 가운데 가장 큰 하나를 받았습니다. 이 책을 공부방의 창문 앞에서 읽었는데, 거기서 받은 인상이 너무나 은밀하고 부드러워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종교의 모든 위대한 진리와 영원의 신비는 제 영혼을 이 세상 것이 아닌 행복에 잠기게 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마련해 주시는 것에 대해 미리부터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보상이 이 세상의 하찮은 희생에는 견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할 수 있는 한 수없이 많은 애정의 표시를 그분께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자들의 크고 영원한 보상이 되어 주실 때, 그들에게 베푸실 완전한 사랑과 영접에 관한 여러 가지 말씀을 적어 두고, 제 마음을 태우는 사랑의 말씀을 끊임없이 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