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에서
셀린 언니와 저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탄절부터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데다 언니와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제 키가 많이 자랐고 은총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전에 셀린 언니에게 왜 내게 비밀로 하는 것이 많은지 불평했더니 셀린 언니는 네가 너무 어려서 이 등받이 없는 의자 높이만큼은 커야 믿고 털어놓을 수 있다고 대꾸했습니다. 그래서 셀린 언니와 나란히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그 의자 위로 꾸역꾸역 올라가서 이제 마음을 터놓고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이런 노력으로도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매의 인연보다 더 강한 인연을 맺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노래한 «영적 찬가»의 말씀을 우리에게 이뤄 주셔서 우리를 영혼의 자매로 만드셨습니다. “그대 자취를 따라 소녀들 걸음도 가볍게 길을 달리네. 불꽃에 스치고, 향기로운 술에 취하여 천상의 향취를 풍기는구나.”67 정말로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예수님의 자취를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에 듬뿍 뿌리신 섬광 같은 사랑과 음료로 주신 달고 진한 술은 잠시 지나가는 세상 것들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했고, 우리 입술에서는 하느님께서 가득 불어넣으신 사랑의 단내가 풍겼습니다. 저녁마다 망루에서 나누던 이야기는 얼마나 감미로웠는지요! 우리는 시선을 저 멀리 둔 채 하얀 달이 울창한 나무 숲 뒤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잠든 자연 위에 퍼지는 은빛 같은 달빛, 높은 창공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들, 구름을 서서히 밀고 가는 저녁의 가벼운 바람,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휘황한 저쪽’68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아름다운 천국으로 우리 영혼을 이끌고 올라갔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때 우리 영혼에 넘치던 정은 모니카 성녀께서 아들을 데리고 오스티아 항구에 가셨을 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경이로움에 황홀감을 느끼면서 그때 성녀의 영혼에서 넘치게 된 정과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큰 성인들이 받으신 만큼의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준주성범»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수많은 빛 가운데 스스로 드러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은은히 가려진 채 그림자 같은 모습과 징표로써 계시해”69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에도 이렇게 당신을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눈에 드리우신 휘장은 얼마나 얇고 가벼웠는지요! 신덕과 망덕이 아니라 애덕이 우리가 찾는 그분을 이 세상에서 만나게 하였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거리에서 당신을 만날 때 누구의 경멸도 받지 않고 나 당신에게 입 맞출 수 있으련만.”(아가 8,1)
이처럼 큰 은혜는 효과도 컸습니다. 우리에게는 덕을 닦는 것이 기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의 고민과 갈등이 얼굴에 드러났으나 차츰 그 인상이 사라지고, 저를 끊어 버리는 것이 점점 쉬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라고 하신 은혜를 성실하게 받으면,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다른 은혜도 주셨습니다. 그분은 영성체를 통해 제가 감히 바랄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자주 제게 주셨습니다. 저는 고해 신부님에게 성체를 모시는 횟수를 늘려 달라고 청하지 않고, 신부님이 정해 주시는 대로만,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모실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대담하지 못해서 그렇게 했지만, 대담했다면 아마 다르게 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고해 신부님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하느님께서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은 금으로 만든 성합 속에 계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무한정 사랑하시는 다른 천국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은 그분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랑하는 삼위일체의 살아 있는 성전인, 우리 영혼 안의 천국입니다.
그래서 제 바람과 곧은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 5월에는 한 주일에 네 번씩, 축일이 있을 때는 한 주일에 다섯 번씩, 신부님이 제게 영성체를 허락하도록 하셨습니다. 고해소를 나올 때 두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제게 주신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해하는 데 시간이 잠깐밖에 걸리지 않았고, 마음속의 은밀한 생각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제 생각을 알고 계셨으니까요. 걸어가는 길은 너무 곧고 밝아서, 예수님 외에 다른 인도자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적 지도자들을 우리 영혼 안의 예수님을 비춰 주는 충실한 거울로 생각했으나, 제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중개자를 쓰지 않으시고 직접 당신을 보여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