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부르심
동산지기가 제철이 오는 동안 과일이 잘 익도록 정성을 들이는 것은 그 과일을 나무에 매달린 채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차린 식탁에 내놓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작은 꽃에게 많은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세상에 계시던 어느 날 기쁨을 참지 못하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하고 부르짖으신 예수님께서 제 안에서 당신의 인자하심을 빛내고자 하셨습니다. 제가 작고 약하기에 그분은 제게 몸을 굽히시고 당신 사랑의 비밀을 가만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 만일 예수님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들이, 고작 열네 살 된 아이가 그들의 학문으로도 알아내지 못했던 그분 사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면 영혼이 가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영적 찬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인도자는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빛뿐이라네. 한낮의 햇빛보다도 더 밝은 이 빛은 나를 확실히 인도하여, 내 속까지 잘 아는 그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구나.”70 그 기다리는 곳이란 곧 ‘가르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이의 그늘에 앉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아가 2,3)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매우 급하게 부르셔서 불꽃을 건너가야 할지라도, 예수님께 충실하기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제가 성소를 따르도록 격려해 주는 이는 오직 사랑하는 폴린 언니뿐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언니의 마음으로 충실히 전달되어서, 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5년 전에 언니를 받아들인, 천상 이슬로 적셔진 당신의 복된 언덕에 절대로 다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5년 동안이나 원장 수녀님과 떨어져 있어서, 당신을 아주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당할 때 제가 갈 길을 인도해 주신 분은 원장 수녀님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가르멜 수녀원의 면회실을 찾아가는 것이 제게는 점점 큰 괴로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면 거절을 당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리 언니는 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제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원장 수녀님까지도 제가 가르멜에 들어오는 데 시련을 겪게 하시고, 몇 번이나 저의 갈망을 늦추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정말로 성소를 받지 않았더라면 첫 번째 시련에서 멈추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답하려고 하자마자 바로 방해에 부딪혔으니까요. 셀린 언니에게는 어린 나이에 가르멜에 들어가려는 제 소원을 말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셀린 언니에게 무엇을 숨기는 것은 매우 어려웠으니까요. 그러나 이 괴로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셀린 언니도 곧 제 결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언니는 그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고 놀라운 용기로 하느님께서 언니에게 요구하시는 희생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려면 우리가 얼마나 굳게 결합되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하나의 영혼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우리는 소녀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생활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큰 자유도 주어져서 우리의 생활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행복한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상적인 행복한 생활을 맛보기가 무섭게 제가 스스로 돌아서야 했는데, 사랑하는 셀린 언니는 한순간도 반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먼저 부르지 않으셨다고 불평을 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언니도 저처럼 성소를 받고 있었으니, 언니가 먼저 떠나야 했지요. 그러나 순교자들 시대에 감옥에 남은 이들이 원형극장에 먼저 나가서 싸우게 된 형제들에게 기쁘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자신들은 훨씬 더 큰 싸움을 위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은 것처럼, 셀린 언니도 데레사를 떠나보내고 예수님께서 당신 ‘사랑의 특권자’를 위해 마련하신 영광스럽고 처절한 싸움을 위해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