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임금님의 작은 꽃
셀린 언니는 제 싸움과 괴로움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됐고, 언니는 자신의 성소에 관한 것처럼 제 괴로움의 몫을 똑같이 받아 주었습니다. 이처럼 셀린 언니의 반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아빠에게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미 언니 셋을 하느님께 바친 분에게 어떻게 또 당신 여왕을 보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 이것을 말할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마음속의 싸움을 겪었는지요! 그러나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곧 열네 살 반이 될 것이고, 아름다운 성탄절은 겨우 여섯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저는 지난해 ‘저의 은혜’를 받은 바로 그 밤에 가르멜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 중대한 고백을 할 날을 성령 강림 대축일71로 정하고, 하루 종일 사도들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제가 할 말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도들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도와 희생으로 사도들의 사도로 만들기로 정하신 이 작고 어린 이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날 오후 저녁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빠에게 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빠는 연못가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두고 계셨습니다. 열기를 잃은 햇살은 큰 나무 꼭대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작은 새들은 저녁 찬미가를 즐겁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멋진 얼굴은 천상의 표정을 지니고 있어서 저는 그분의 마음속에 평화가 넘쳐흐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무 말없이 눈물을 머금고 그분의 곁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빠는 다정히 저를 바라보시다가 제 머리를 끌어 가슴에 안고, “내 작은 여왕, 무슨 근심이 있는 거니? 무슨 일인지 말해 보렴.”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감정을 숨기려는 것처럼 일어나셔서 제 머리를 가슴에 안은 채 천천히 걸으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을 고백했고, 들으시던 아빠도 함께 우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주님의 성소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말씀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다만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사정을 잘 말씀드리니까, 곧고 소박한 성품의 아빠는 즉시 제 바람이 하느님의 뜻임을 아시고, 하느님께서 당신 아이들을 요구하심으로써 큰 행복을 주셨다고 깊은 신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거닐었는데, 다정한 아빠가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여 주셨으므로 제 마음은 가벼워져서, 아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분은 희생을 통해 얻는 잔잔한 기쁨을 누리시는 듯, 제게 성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그 말씀을 회상해서 옮기고 싶지만, 너무나 향기로웠던 추억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모든 것을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는 임금님이 무심결에 행하신 상징적인 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담 낮은 곳으로 가까이 가셔서 백합을 작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흰 꽃을 가리키시며 한 송이를 따서 제게 주셨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꽃을 피우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셨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내력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작은 꽃과 어린 데레사를 위해 하시는 일은 그만큼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꽃을 소중한 유물처럼 받았습니다. 아빠가 꽃을 뿌리 하나 상하지 않게 온전히 뽑으신 것을 보고, 저는 그것이 촉촉한 이끼 속에 처음 며칠 동안 살다가 좀 더 기름진 다른 땅에서 더 오래 살도록 마련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아빠는 제 생애의 첫걸음을 걸었던 따뜻한 골짜기를 떠나 ‘가르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꽃에게 하신 행동과 같은 것을 저에게도 몇 분 전에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작은 흰 꽃을 «준주성범» 2권의 ‘예수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함’72이라고 쓰인 장에 넣었고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꽃줄기가 뿌리 근처에서 부러졌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오래지 않아 당신 작은 꽃의 뿌리를 끊어서, 땅에서 시들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