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명을 깨달았다

내 소명을 깨달았다

바이외에 다녀온 지 사흘 뒤에 저는 훨씬 더 먼, 영원한 도읍인 로마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 이 여행의 감회가 어떠했는지요! 이 여행 하나로 저는 몇 해를 공부한 것 이상의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 여행에서 세상의 잠시 지나가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 태양 아래에는 마음의 괴로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것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술과 종교의 걸작품들을 모두 구경하였고, 사도들이 밟으신 땅과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땅도 밟았으며, 거룩한 물건들을 직접 만지기도 하면서 제 영혼은 더욱 자라났습니다.

로마에 다녀온 것은 기쁜 일이지만, 아빠가 저를 여행에 데려가신 이유가 수도 생활에 대한 제 생각을 바꾸기 위함이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이해됩니다. 사실 확고한 신념이 없는 성소자라면 그로 하여금 흔들리게 할 만한 것들이 로마에는 많았으니까요. 셀린 언니와 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여행에서는 순례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류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위축되고 어리둥절해지기는커녕, 그 많은 작위와 ‘de’78 표시가 우리 눈에는 한 줄기 사라질 연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때때로 눈을 현혹시켰으나 가까이 가 보니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위대한 이름이 주는 영향에 개의치 말고, 친한 사람을 많이 두려고 하지 말며, 사사로운 정을 주고받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마라.”고79 하신 «준주성범»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78. 프랑스의 귀족 이름 앞에 들어가는 글자다. –역자 주

79. «준주성범» 3권 24,2

참된 위대함이란 대단한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안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의 종들에게는 다른 이름이 주어지리라.”(이사 65,15) 하고 말씀하셨고, 요한 성인도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묵시 2,17)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가서야 우리의 자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하느님으로부터 각자에게 마땅한 칭찬이 주어질 것인데,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자가 되기를 힘쓴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가장 존귀하고 부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경험한 것은 신부님들에 관한 것입니다. 로마에 가기 전까지는 그분들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한 중요한 목적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을 끌었지만, 수정보다도 더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신부님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이탈리아에서 제 천직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유익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여행도 그리 먼 길은 아니었습니다.

한 달 동안 거룩한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들이 자신들의 높은 지위로 인해 천사들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역시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세상의 소금’이라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신부님들조차 다른 이들의 기도를 받을 필요가 있는데, 그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마태 5,13)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원장 수녀님, 영혼을 구하는 그 소금을 보존하려는 우리의 사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가르멜’의 사명입니다. 신부님들이 말과 특히 표양으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신부님들의 신부님’이 되는 것이 우리의 기도와 희생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이쯤에서 말을 줄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써도 끝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