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아시시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레베로니 신부님의 마차에 타게 된 일이 있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어떤 여자도 이런 호의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특혜를 받게 된 과정은 이렇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의 성덕의 향기가 밴 곳을 가 본 다음 마지막으로 클라라 성녀의 동생인 아녜스 성녀의 수도원에 갔습니다. 성녀의 머리를 실컷 살펴보고 나서 일행의 마지막 틈에 끼어 나오는데 보니, 허리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그것을 찾고 있는 저를 보시고 신부님 한 분이 안쓰럽게 여겨 도와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허리띠만 찾아주신 다음에 바로 가 버리셨고, 저는 혼자 남아서 허리띠의 여밈 장식을 마저 찾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한쪽 구석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허리띠 장식을 주워서 여몄는데, 그 사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는지 문득 주변을 보니 레베로니 신부님의 마차만 남고 그 많던 마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당에 혼자 남게 되어서 몹시 당황하였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미 보이지도 않게 된 마차의 뒤를 쫓아 달려갈까? 그러다가 기차를 놓치면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실 텐데… 아니면 레베로니 신부님의 마차에 태워 달라고 할까? 저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속으로는 쩔쩔매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태연한 척하며 신부님께 난처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분도 당황하셨습니다. 그분의 마차도 이미 순례단의 주요 인사들로 꽉 차서 빈자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한 분이 자리를 제게 내주시고 내려서 마부 옆에 가서 앉으셨습니다. 저는 덫에 든 다람쥐 같았습니다. 거기 높으신 어른들 틈에 끼어서, 더구나 ‘제일 무서운 어른’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으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베로니 신부님은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는 틈틈이 가르멜에 대한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시며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에 어른들은 ‘커다란’ 지갑을 꺼내서  마부에게 (값은 이미 모두 치렀지만) 봉사료를 주었습니다.  저도 그분들을 흉내내어 제 ‘조그만’ 지갑을 꺼냈더니 레베로니 신부님은 제가 동전을 꺼내지 못하게 막으시고, 두 사람 몫으로 조금 더 ‘큰돈’을 마부에게 주셨습니다.

한번은 합승 마차에서 레베로니 신부님 바로 옆에 앉았는데, 그분은 제가 가르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 상처에 약이 되기는 했으나, 돌아오는 길이 우울하기는 여전했습니다. 이제 저는 교황님께 희망을 둘 수가 없었으니까요. 저는 물 한 방울 없는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지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구원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만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성인들보다는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