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피렌체

슬픔 가운데서도, 방문하는 성지에서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가르멜 수녀들이 우리에게 창살문을 활짝 열어 주어서 제대 한가운데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데 파치 성녀의 유해를 뵐 수 있었고,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의외의 특전을 받고 많은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묵주를 성녀의 무덤에 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쇠창살로 막혀 있고 그 사이로 들어갈 만한 손은 제 손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묵주를 제게 가져왔으며, 저는 뿌듯한 마음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저는 ‘온갖 것을 다 만져 볼’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에 들어가서도 금장 유물갑遺物匣 속에 있는, 예수님께서 매달리셨던 실제 십자가의 부스러기들, 가시 두 개, 못 하나를 공경하였습니다. 이 귀중한 유물들을 공경하다가, 직접 만져 보고 싶어졌습니다. 유물갑이 유리로 덮여 있지 않아서, 작은 틈새로 제 손가락을 넣어 예수님의 피로 적셔진 못에 대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충만한 상태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니, 제 생각이 순수하며, 제가 이 세상에서 당신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저는 마치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아버지의 보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는 여인들이 어찌 그리 쉽게 파문을 당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늘 “여기 들어가지 마라, 저기 들어가지 마라, 그러면 파문당한다!” 하고 누군가가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여인들은 정말 불쌍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사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하느님을 사랑하며,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던 날에는 군인들에게 온갖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분의 성스러운 얼굴을 씻어 드리는 등 사도들보다 더 용감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받기로 택하신 경멸을 이 세상에서 여인들이 받도록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생각이 사람들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이사 55,8 참조). 그때에는 “꼴찌가 첫째”(마태 20,16)가 될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여행하는 동안 천국에서의 첫째를 위해 꼴찌를 견딘다는 것이 가끔은 어려웠습니다.

가르멜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순례단을 따라 바깥 복도에서만 구경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도원 내부 회랑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저쪽에서 가르멜 수사 한 분이 나가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가기는커녕 수사에게 다가가서 회랑 안의 그림을 가리키며, 참 예쁘다는 눈짓을 했습니다. 그분은 등으로 늘어진 머리칼이며 앳된 제 얼굴을 보고 제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듯 떠나 가셨습니다. 만일 그때 이탈리아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저는 장차 가르멜 수녀가 될 거라고 말했을 것입니다만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 때문에 언어가 뒤섞여 버린지라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