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파리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이제 제 여행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너무 장황하게 말씀드려도 용서해 주세요. 이 글을 쓰기 전에 기억을 가다듬지 못했고, 한가한 시간도 별로 없어서 여러 번에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이야기가 지루하게 생각되실지도 모릅니다. 다만 천국에 가면 제가 받은 은혜에 대해 그곳에서 당신께 즐겁고 흥미롭게 다시 말씀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느낍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우리의 다정한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저를 한 번만 바라봐도 당신은 모든 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슬프게도 아직은 세상의 말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저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순박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순례단이 11월 7일에 파리에서 출발하였는데, 아빠는 그 며칠 전에 우리를 파리로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어느 날80 새벽 3시에 아직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리지외 시를 지나갔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기분에, 저 너머 세상에서 엄청난 일들이 저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굴러라 굴러, 마차야, 이제 우리 큰길을 달린다.”라는 옛날 노래를 유쾌하게 부르셨습니다. 오전 중에 파리에 도착해서 바로 구경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려 녹초가 되셨고 덕분에 우리는 여기저기를 구경하였습니다. 이내 우리는 파리의 모든 명소들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승리의 성모 성당에서만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80. 1887년 11월 4일이다.

그곳에서 제가 느낀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제게 내려 주신 은혜에 너무나 감격하여 첫영성체 때처럼 단지 눈물로만 행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제게 미소를 보내 주시고 병을 낫게 해 주신 분이 진실로 당신이었다는 것을 성모님께서는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모 엄마께서 저를 지켜 주고 계시며, 제가 그분의 딸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을 엄마라고 부를 때가 어머니라고 부를 때보다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언제나 지켜 주시길, 엄마의 ‘망토 그늘’에 숨고자 하는 제 꿈을 어서 빨리 이루어 주시길 얼마나 열렬히 간청했는지 모릅니다! 아, 그것은 제 어릴 적 첫 소원들 중 하나였습니다. 자라면서 성모님의 망토를 진정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은 가르멜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의 모든 소망은 그 비옥한 정원을 향하게 됐습니다.

또한 저의 순결함을 더럽힐 수도 있는 모든 것을 제게서 물리쳐 달라고 승리의 성모님께 간청했습니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는 동안에 제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티토1,15)라는 말씀과, “악은 감각 없는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하고 곧은 영혼은 어느 곳에서도 악을 발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게다가 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제가 그것을 알게 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저는 요셉 성인께도 저를 보호하여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요셉 성인께 대한 신심은 동정 성모님께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았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날마다 ‘동정녀들의 아버지시며, 보호자이신 요셉 성인’께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긴 여행 기간 동안 점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살핌을 잘 받고 있으므로 조금도 겁낼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몽마르트의 대성전에서 예수 성심께 우리를 봉헌한 다음, 11월 7일 아침에 파리를 떠났습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순례단원들과 친해졌습니다. 평상시에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을 잘 못하던 제가 그 못난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귀부인들이나 신부님들 또 쿠탕스의 주교님과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되어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제 생각에 제가 지금까지 저만의 작은 세계에서 살아온 듯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느꼈으며, 아빠는 그런 두 딸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시는 만큼 우리도 아빠가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순례단원 중에 저의 사랑하는 임금님보다 더 멋지거나 훌륭한 신사는 없었으니까요. 아빠는 셀린 언니와 제가 늘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가끔 우리가 마차에서 내려 멀리 가면, 저를 불러서 리지외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당신과 팔짱을 끼게 하셨습니다. 레베로니 신부님은 저의 모든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셨습니다. 그분이 멀리서 저를 지켜보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식탁에서 제가 신부님 맞은편에서 비켜 앉을 때면, 신부님은 몸을 기울여 제 쪽을 보시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 하셨습니다. 아마 신부님은 제가 진정으로 가르멜 수도원의 일원이 될 수 있는지 알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저에게 매우 호감을 가지셨던 것을 보면, 그렇게 지켜보신 결과가 만족스러우셨던 듯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도 말씀드리겠지만, 로마에서는 조금도 제 편이 되어 주지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