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스위스

우리 순례의 목적지인 영원한 도읍, 로마로 가는 길에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들을 보았습니다. 우선 스위스를 지나가며, 머리에 흰 눈을 이고 구름 위에 솟아 있는 높은 산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흐르는 멋진 폭포, 깊은 골짜기를 덮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고사리 식물들, 진홍빛 헤더꽃 군락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이렇게 풍성하게 전개된 자연의 아름다움이 제 영혼에 얼마나 커다란 이익을 주었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제 영혼은 잠시 동안만 머무르는 귀양살이 땅에도 이러한 걸작품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기차 안에 서서 거의 숨도 못 쉬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앞에서 전개되는 경치와는 또 다른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서, 기차 양방향에 다 서고 싶었습니다.

기차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했는데, 발아래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비껴 있어서 우리를 집어삼킬 것 같았습니다. 또 어떤 때는 예쁜 시골집들과 종탑 위로 순백의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마을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타는 듯한 노을로 금빛 물이 든 거대한 호수도 보았습니다. 잔잔하고 맑은 물결이 파란 하늘빛과 석양의 새빨간 빛과 어우러져서 너무도 시적이고 황홀한 광경이었습니다. 광활한 지평선 끝에는 윤곽이 흐릿한 산들이 보였는데, 햇빛으로 아련하게 보이는, 눈에 묻힌 산봉우리가 그 아름다운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름다운 경치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위대하신 하느님과 멋진 천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유가 제한되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희생을 매일 바쳐야 하는 수도 생활이 제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예사로 아집에 빠져서 시련의 숭고한 목적을 잊어버리기 쉬울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가르멜에 갇혀서 별이 반짝이는 한 조각의 하늘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힘든 때가 오면 오늘 본 것을 기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기억이 제게 용기를 줄 것이니, 제가 오직 사랑하고 싶은 하느님, 그분의 크심과 권능을 생각하며 사소한 이해관계는 쉽사리 떨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신”(1코린 2,9) 것을 생각하는 저는 지푸라기 같은 작은 것에 애착을 가지는 그런 불행한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