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토
볼로냐를 떠날 때 제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볼로냐 시내에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학생들과 섞여 길을 걸어가는 것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특히 한 학생이 제게 무례한 행동까지 한 터라, 그곳을 떠나게 되니 매우 기뻤습니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축복받은 집을 옮기시려고 로레토를 택하신 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82 그곳에는 평화와 기쁨과 가난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모두가 순진하고 소박했으며, 여인들도 다른 도시의 여자들과 달리 파리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우아한 이탈리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로레토는 무척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룩한 집’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까요? 아! 성가족이 사셨던 바로 그 지붕 아래에 들어갈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시선으로 바라보셨을 사방의 벽들을 쳐다보며, 요셉 성인의 땀으로 적셔지고, 예수님을 팔에 안고 걸으시던 성모 마리아의 발걸음이 닿은 그 바닥을 밟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사가 성모님께 나타났던 조그만 방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서 쓰시던 작은 그릇에 제 묵주를 놓았습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추억들입니까!
그러나 가장 기뻤던 것은 예수님이 사셨던 바로 그 집에서 그분을 받아 모시고, 예수님께서 사셨던 영광스러운 그 자리에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살아 있는 궁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교회의 관습에 따라 성체성사는 한 제대에서만 행해졌고, 성합을 모셔 두는 제대는 하나만 있으며 교우들은 거기서만 영성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로레토에서 성체성사가 행해지는 곳은 ‘거룩한 집’ 위에 세운 대성당이었습니다. 마치 귀중한 다이아몬드가 흰 대리석으로 만든 보석 상자 속에 담겨 있듯이, ‘거룩한 집’은 대성당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석 상자인 대성당이 아니라, 그 다이아몬드인 '거룩한 집'에서 성체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아빠는 보통 때처럼 순순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셨지만, 셀린 언니와 저는 줄곧 우리와 함께 다니던 신부님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특전을 받아 마침 ‘거룩한 집’에서 미사를 올릴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작은 제병 두 개를 받아다가 사제용 큰 제병과 나란히 성반 위에 놓았습니다. 원장 수녀님, 이 ‘거룩한 집’에서 우리가 함께 영성체할 때 얼마나 즐거웠을지 당신도 아시겠지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임금님의 궁궐에서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때는 우리의 천상 기쁨이 끝날 염려도 없을 것이며,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사시던 곳의 거룩한 벽을 몰래 긁어 가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이 영원한 우리 집이 될 테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땅 위에 있는 당신의 집을 주고자 하지 않으시고, 오직 가난과 숨은 생활을 사랑하게 하시려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영화로운 궁전을 마련해 주셨고, 거기서 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흰 제병 모양 아래 숨어 계신 하느님이 아닌, 무한한 영광의 광채 속에 계시는 하느님 그대로를 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