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카타콤Catacombae’84에서도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제가 순교자에 관한 책에 묘사된 것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카타콤에서 오후를 다 보냈는데도 몇 분밖에 안 지난 듯 느껴질 만큼, 그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카타콤에서 기념될 만한 것을 가져가고 싶어서, 언니와 저는 행렬이 좀 멀어지자 체칠리아 성녀의 옛 무덤 속에 들어가서 성녀로 인해 축복받은 흙을 조금 가져왔습니다. 로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 성녀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녀가 사셨던 곳이자 순교터인, 지금은 성당이 세워져 있는 자리85를 보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성녀께서 음악의 수호성인이 되신 것이 음악에 재능이 있으셔서가 아니라,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결혼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하시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천상배필인 하느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셨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성녀께 신심 이상의 것, 즉 같은 수행자로서의 참된 우정을 느꼈습니다. 이후에 그분은 제가 좋아하는 성녀이자 제 비밀 이야기를 속삭일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것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특히 매력을 느낀 점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내맡기고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여, 이 세상 즐거움만 추구하는 영혼들까지도 깨끗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체칠리아 성녀는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新婦와 비슷했습니다. 저는 성녀에게서 “기를 든 군대”(아가 6,10)를 보았습니다. 성녀의 일생은 가장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피어나는 정말 아름다운 노래 그 자체였는데, 이는 조금도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성녀의 가슴 위에는 복음서가 놓여 있고 마음속에는 동정녀의 정배가 계셨으니까요……!
성녀 아녜스 성당을 가본 것도 무척 좋았습니다. 성녀의 이름이 원장 수녀님과 같아, 마치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간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성녀의 이름을 갖고 계신 사랑하는 당신에 대해 오랫동안 성녀께 이야기한 다음, 당신께 드릴 생각에 당신 수호성인의 유물을 하나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아녜스 성녀 시대부터 내려오는, 따라서 성녀께서 여러 번 바라보셨을 훌륭한 모자이크에서 떨어져 나온 조그만 붉은 돌 조각을 주웠을 뿐, 다른 유물은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이 주지 않자 성녀께서 우리에게 손수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저는 이 돌을 아녜스 성녀께서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을 돌보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의 표시이자 증거라고 늘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