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루다

소원을 이루다

가르멜에서 사순 시기로 인해 연기되었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는 날이던 1888년 4월 9일 월요일에 저는 가르멜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전날 제가 마지막으로 앉게 된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아, 이 다정한 자리가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요! 가족들이 저를 금세 잊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더없이 다정하게 쓰다듬고 많은 말을 건네어 이별의 아픔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외숙모는 때때로 흐느끼셨고 외삼촌은 다정한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사촌인 잔 언니와 마리 언니도 애정을 가득 담아 대해 주었는데, 심지어 마리 언니는 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지금까지 저를 괴롭혔던 일이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달 전에 캉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서 돌아온 사랑하는 레오니 언니는 키스를 퍼붓고 강하게 포옹해 줬습니다.89 그런데 이제까지 셀린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네요. 그러나 원장 수녀님, 셀린 언니와 제가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하시겠지요…….

89. 레오니는 1887년 7월 16일 캉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들어갔다가 몸이 약해서 1888년 1월 6일에 나왔다.

그 기쁜 날 아침, 제 어린 시절의 아담한 보금자리,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뷔소네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사랑하는 임금님의 팔을 잡고 가르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전날 저녁처럼 온 가족들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내려오시자, 제 주위에는 흐느껴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 문을 향하여 가라는 눈짓을 보자, 가슴이 어찌나 심하게 뛰던지 발을 옮겨 놓기가 힘들었습니다. 가슴이 이렇게 심하게 뛰다가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 그 순간은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일일이 포옹한 뒤, 축복을 받으려고 아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빠도 함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시며 제게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이 노인이 자신의 꽃다운 청춘의 딸을 하느님께 바치는 광경은 천사들을 기쁘게 했을 것입니다. 잠시 후 방주의 문이 제 뒤에서 닫히고, 제게 어머니가 되어 주셨고 앞으로는 제 행동의 모범이 되어 주실 '사랑하는 언니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져서 제 영혼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그윽한 평화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 마음속 평화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7년 넘게 계속되어서 아무리 어려운 시련 속에 있어도 그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른 청원자90들처럼, 저도 들어가자마자 성가대석으로 인도되었는데, 성체를 제대 위에 모셔 놓았기 때문에 성가대 쪽은 어두웠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계신 즈느비에브 수녀님의 눈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수녀님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아는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곤자가의 마리아 수녀님을 따라 수녀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봤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마치 어릴 때 꿈꾸던 광야에 온 것 같았고, 특히 우리의91 조그만 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고요한 것이어서 제 작은 배가 지나가는 잔잔한 물을 흔드는 가벼운 바람조차 일지 않았고, 제 파란 하늘을 가리는 구름 한 조각도 없었습니다. 아, 이제껏 겪은 모든 시련에 대해 분에 넘치는 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나는 오래도록 여기 있으리!” 하고 읊었는지요!

90. 전교 지역의 수도원에서는 보통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를 거치지만 그리스도교를 널리 믿는 서양에서는 청원기부터 시작한다. –편집자 주

91.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서는 가난의 덕을 닦고자 무엇이든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역자 주

이 행복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 아니어서, ‘첫날의 환영’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르멜에 들어오자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환멸도 갖지 않도록 은혜를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수도 생활은 예상했던 그대로였고, 어떠한 희생도 당연하게 생각됐습니다. 그렇지만 원장 수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첫걸음은 장미보다도 가시를 더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괴로움은 두 팔을 벌리고 저를 맞이했고 저는 그 품에 반갑게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수도원에서 하려고 한 것은 서원식을 하기 전 시험 기간 동안 예수님의 거룩한 발 아래에서 맹세한 것처럼 ‘영혼들을 구하고 특히 신부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기에, 괴로움이 더하면 더할수록 괴로움에 끌리는 마음이 더해 갔습니다. 저는 5년 동안이나 이런 고난의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 아는 것이므로 그토록 심각한 괴로움이 밖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 세상의 마지막 날, 우리가 모든 영혼들의 이야기를 알게 될 때 얼마나 놀라울까요! 제 영혼이 걸어온 길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