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착복식

나의 착복식

그러는 동안 제 착복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수녀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성대한 예절로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내보내지도 않고101 벌써 수도복을 입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일정이 미뤄졌습니다. 뜻밖에도 착복식이 다가오던 시기에 아빠의 두 번째 중풍 증세가 나타나서, 주교님은 착복식 날을 1월 10일로 정하셨습니다. 참으로 오래 기다렸습니다.102 착복식 날은 정말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데다 눈까지 소복하게 내렸습니다. 제가 눈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원장 수녀님께 말씀드렸던가요……? 어릴 때는 그 하얀 빛깔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때는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눈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저는 겨울에 피는 조그만 꽃이고, 제가 태어나 최초로 본 자연의 치장한 모습이 하얀 망토를 두른 듯 눈으로 뒤덮인 풍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착복식 날, 자연도 저처럼 하얗게 치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전날 때때로 가랑비가 내려서 저는 회색 하늘만 슬프게 바라보았습니다. 날씨가 아주 따뜻해서 눈을 볼 희망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착복식 날은 즐거웠으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즐거웠던 꽃은 사랑하는 저의 임금님이셨습니다. 여태껏 그토록 아름답고 위엄이 있어 보이신 적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을 칭송했으니, 이날은 아빠가 승리하신 날이요, 이 세상에서 그분이 마지막으로 참석하신 행사였습니다. 아빠는 당신의 딸을 ‘모두’ 하느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셀린 언니도 아빠에게 성소를 말씀드려서, 그분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며 당신 딸들을 모두 수녀가 되는 영광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으니까요.

101. 착복식 날 수녀 지원자들은 혼례복을 입고 수녀원을 나가서 가족들 예절에 참석한다.

102. 청원기가 보통 6개월이므로, 이미 1888년 10월에 착복식이 있어야 했다.

예절이 끝날 무렵에 주교님은 ‘테 데움Te Deum103을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신부님 한 분이 이 노래는 서원식 때만 부르는 것이라고 주교님께 말씀드렸지만, 이미 시작된 노래는 끝까지 불러졌습니다. 이 예식에 다른 모든 예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노래조차도 ‘완전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저의 사랑하는 임금님을 안아 보고 다시 봉쇄 안으로 들어갔는데 회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꽃과 촛불 가운데에서 제게 미소 지으시는 ‘분홍빛 아기 예수님의 석상’이었고, 눈을 돌리니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뒤뜰은 저의 옷차림처럼 흰빛으로 뒤덮였습니다. 얼마나 고운 예수님의 마음입니까! 당신의 어린 약혼자의 바람을 채워 주시려고 눈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권세가 있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어떻게 눈을 내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세상의 사람들도 소망으로 이런 꿈을 꾸어 봤을지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온 동네가 제 착복식 날 눈이 온 것을 조그만 기적으로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눈을 좋아하는 것이 특이한 취향이라고들 했습니다. 이로써 눈처럼 흰 백합을 사랑하시는 그분, 동정녀들의 정배이신 분의 ‘높으신 자애’가 더 밝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103. ‘하느님 당신을’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성가다. –편집자 주

예절이 끝난 후 주교님이 들어오셔서 여러 가지 자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가 마침내 뜻을 이룬 것을 보시고 자랑스러우신 듯했고, 저를 당신의 ‘작은 딸’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이 아름다운 착복식 이후 오실 때마다 제게 언제나 친절하셨는데, 특히 우리 수호성인이신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100주년 기념식 때 베풀어 주신 친절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분은 제 머리를 양손으로 쥐시고 여러 번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귀여움을 받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천사들과 성인들이 모인 앞에서 저를 귀여워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게 하셨고,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그 표징을 조금씩 보여 주셔서 말할 수 없이 큰 위안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