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를 임신한...
데레사를 임신한 지 4개월이 되었을 때, 마르탱 부인은 남동생 부부에게 ‘아마도 올해 말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1872년의 일인데, 또 아이가 별 탈 없이 태어나기를 바란다고도 쓰여 있어 막내딸 데레사의 존재가 처음으로 이 편지에서 언급된다. 아기는 생후 5개월에 죽은 여덟 번째 아기 데레사를 기억하는 뜻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침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어제, 목요일 밤 11시 반에 예쁜 여자 아기가 태어났어. 아기는 아주 건강하단다. 몸무게가 8파운드나 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6파운드쯤 될 것 같아. 이 정도면 적당한 몸무게 아니니? 아주 순한 아이 같아. 진통도 30분 정도밖에 겪지 않았어. 이전에도 순산한 편이었지만 갖다 댈 수가 없다. 내일 토요일에는 유아 세례를 받기로 했단다. 너희들만 와 주면 완벽한 행사가 될 것 같아. 대모는 우리 큰딸 마리가, 대부는 마리 또래의 남자아이가 맡게 될 거야.”
부인의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뜻밖의 사건이라면 어떤 아이가 제 아버지가 쓴 것이라며 짧은 시를 적은 쪽지를 집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방긋방긋 웃으며 쑥쑥 자라거라
따뜻한 관심, 부드러운 사랑,
모든 행복이 너의 것이니까.
그래, 새벽빛을 향해 미소 지으렴.
넌 방금 터진 꽃망울,
언젠가 한 송이 장미로 필 거야.
그러나 데레사는 태어나자마자 시련을 겪었다. 태어난 지 2주쯤 되었을 때 급성 장염으로 크게 아팠고, 3개월이 됐을 때에는 더 큰 위기를 맞았다. “데레사가 많이 아파요. 아기를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도 이제는 모두 잃어버렸어요. 불쌍한 우리 아기는 어제부터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보고 있자니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집니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의사의 지시에 따라 유모를 정해 아기를 스말레에 살던 지인 로즈 타예에게 맡겼다. 유모가 쾌활하고 건강한 시골 사람이라 아기는 유모의 보살핌 아래 1년 동안 시골 아이로, 햇볕에 검게 그을리고 꽃과 동물들 속에서 뛰놀며 무럭무럭 자랐다. “유모가 데레사를 손수레에 태워 들판으로 나갈 때면 아기는 건초더미 위에 앉아 있대요. 거의 울지도 않고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본 적이 없다고 로즈가 말한답니다.”
금발머리에 푸른 눈, 아주 예쁘고 상냥한 아이, 영리하고 발랄하며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끔은 크게 화를 낼 줄도 알고, 의지가 강하며 섬세한 데레사는 곧 모든 사람들과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가 되었다. 특히 데레사가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사랑이 각별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는 평생 사랑에 둘러싸여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제 첫 기억도 다정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 이런 것들뿐입니다!”
알랑송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가족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한, 무척이나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데레사는 폴린 언니의 충고를 따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글로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어렸을 때의 햇살 가득한 시절은 얼마나 빨리 흘렀는지요! 하지만 제 영혼에 달콤하고 따뜻한 흔적들을 새겨 놓았습니다. 세상 만물이 제게 미소를 지었더랬죠. 제가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꽃밭이었고, 저의 낙천적인 성격도 인생의 즐거움에 한몫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런 행복은 깨져 버렸고 데레사 가족도 리지외로 이주하게 된다. 성녀가 직접 말하는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