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하느님의 본질은 창조된 지성에 의해 어떤 유사를 통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실 「요한의 첫째 서간」 제3장 제2절에서 “그가 나타날 때에 우리는 그와 비슷하게 될 것을 알며 또 있는 대로의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2. 그 밖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 제9권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 때 우리 안에 하느님의 어떤 유사(類似)가 생긴다.”라고 한다.
3. 그 밖에도 현실태에 있는 지성은 현실적으로 가지적(可知的)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현실태에 있는 감각이 현실적으로 감성적인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것은 감각이 감각적 사물의 유사로 형상을 받고, 지성은 인식된 사물의 유사로 형상을 받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창조된 지성에 의해 현실적으로 보여진다면 그것은 어떤 유사를 통해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그런 권위적 텍스트는 광영의 빛의 분유에 의한 유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둘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이 세상 삶에 있어서 갖는 하느님의 인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셋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신적 본질은 존재 자체다. 따라서 그것들이 자기 존재가 아닌 다른 지성적 형상(形相)들은 어떤 존재를 따라 지성에 합치한다. 즉 지성 자체에 형상(形相)을 주는 그런 어떤 존재에 따라 지성과 합치하며 지성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적 본질은 현실적으로 인식된 대상으로서, 창조된 지성에 합일케 된다. 이때 신적 본질은 그 자체에 의해, [창조된] 지성을 현실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