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 있어서 본질은 위격과 같은 것인가

[제1절]

첫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하느님에 있어서 본질은 위격과 같은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실 본질이 위격 혹은 자주체와 같은 것들에서는 어떤 것에든, 모든 分離實體들의 경우에서 명백한 것처럼[1] 하나의 본성을 갖는 자주체는 하나뿐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실재적으로 같은 것들의 한편이 다수화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다른 편도 다수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 안에는 위에서[2] 말한 바에서 명백한 바와 같이 하나의 본질과 세 위격이 있다. 그러므로 본질은 위격과 같은 것이 아니다.

2. 그 밖에도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같은 것에 대해 眞일 수는 없다. 그런데 긍정과 부정이 본질과 위격에 대해 각기 眞이 된다. 즉 위격은 구별되고 본질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격과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니다.

3. 그 밖에도 어떤 것도 자기 자신 밑에 있지 않다. 그런데 위격은 본질 밑에 놓여 있다. 따라서 위격은 ‘…의 밑에 놓여 있는 것’ 즉 自主體(主體) 혹은 휘포스타시스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러므로 위격은 본질과 같은 것이 아니다.

 

첫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피조물들에게 있어서 관계에 의한 자주체들의 구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자주체의 구별은 본질적인 근원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관계들이 피조물들에 있어서는 자립(자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는 관계들이 자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들은 상호 대립하는 데 근거하여 자주체들을 구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본질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관계 자체들이 그것들이 실재적으로 본질과 같다는 데 근거하여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하느님에 있어서도 본질과 위격은 우리 이해의 성격을 따라 다르다는 한에, 한편에 대해서는 긍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다른 편에 대해서는 부정되는 귀결이 된다. 따라서 한편이 전제된다고 해서 다른 편도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위에서[9]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신적인 것들에 명칭들을, 피조물들의 양태를 따라 부과한다. 피조물들의 본성은 질료에 의해 개체화되고 이런 질료는 種의 본성 밑에 있는 것 (즉 종의 본성을 밑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체는 (밑에 있는 것, 밑받침하는 것의 의미로) ‘주체들’, 즉 基體들 혹은 ‘자주체들’ 혹은 또 ‘휘포스타시스’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하느님의 위격들도 자주체 혹은 휘포스타시스라고 불리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실재적으로 어떤 밑에 놓여 있음이거나 밑에 있음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